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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마 타고온 한국땅서

VWCC 0 1,314 2007.07.06 10:16

꽃가마 타고온 한국땅서 “난 씨받이로 이용 당했다” 

베트남서 시집 온 투하의 ‘고발장’

[한겨레]


한 베트남 여성이 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딸 둘을 낳고는 버림받은 투하(24·가명)씨. 그와의 두 차례 인터뷰, 서울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상담 내용, 서울가정법원에 낸 소장 등을 토대로 그의 눈과 마음에 새겨진 2007년 한국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 20살=저는 베트남 남부 출신의 투하입니다. 24살에 벌써 딸이 2명이네요. 4년 전, 그러니까 2003년 8월이었지요. 한국 남자와 결혼한 마을 언니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한국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부모님께 말하더군요. 나이 40에 아내와 이혼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남자친구도 사귄 적이 없고, 결혼도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는 걱정이 된 듯 “좋은 사람이냐, 믿을 수 있는 남자냐?”고 마을 언니에게 묻더군요. 언니는 “전 부인과 사이에 아이가 없어 사이가 안 좋았고, 최근에 이혼했지만 별거한 지는 한참됐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ㅂ씨를 만났습니다. 한번밖에 안 봤는데 저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혼 준비금이라며 1천달러를 줬습니다. 두달 뒤 혼인신고 때 그 사람 나이가 47살인 것을 알았죠.


스무살, 잘살게 되리란 꿈만 안고 왔는데…

전처와 이혼했다던 남편은 딸 둘 데리고 전처에게

전화번호도 집도 바꾼채 아이들과 함께 사라져

투하씨 양육권 청구소송…몇달째 정신과 치료


■ 21살=말은 안 통했지만 남편은 잘 해줬습니다. 한국에 온 며칠 뒤 남편은 사전의 단어를 짚어가며, “아기를 낳으면 집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혼한 지 한달만에 저는 아이를 가졌죠. 아이 낳을 날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남편이 “아이가 태어나면 미국에 사는 누나에게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어찌나 눈이 맑던지요.


퇴원해 집으로 왔는데 딸이 없었습니다. 미리 사놓은 아기옷, 젖병까지 사라졌죠. 휘청했습니다. “신생아라 병원에서 돌봐줘야 한다”고 둘러대던 남편은 “앞으로 시골 사는 누나에게 아기를 맡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넌 나이가 어려 아기 키울 줄 모른다”면서요.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 울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더군요.


두 달 동안 밥도 잘 못먹고 울기만 하자 남편은 저에게 “딸이 전처 집에 있다”는 말을 툭 던졌습니다. 전처와 21년 동안 살면서 아이가 없었답니다. ‘베트남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돈을 쥐어주면 이혼도 해주고 양육권도 포기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전처와 짜고 저를 속였다고 하더군요. 전처와 이혼한 지 한달만에 저를 만났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우리 집이 비록 가난하지만 돈 받고 아이를 버리는 짓은 절대 안한다”고 말해줬습니다. 남편은 “첫 딸은 전처한테 준다 생각하고 아기를 더 낳아서 행복하게 살자”고 했습니다.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자식을 어떻게 남에게 주나요. 고소하고 싶었지만 한국말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었죠. 남편은 저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며 위로해줬습니다. 저 역시 남편이 첫 남자였고, 정도 들었죠. 딸을 낳은 석달 뒤 둘째아이가 생겼습니다.


■ 22살=둘째를 가진 지 8개월이 넘었을 때 남편은 “계약이 끝나 집을 비워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을 전처 이름으로 계약해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나요. 전처가 이혼 전 모든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놨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자기를 버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전처는 남편에게 저와 이혼하지 않으면 집도, 돈도 없는 형편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답니다. 남편은 재산을 잃을 수 없어 전처와 재결합하겠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저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남편은 이혼만을 요구했습니다. “둘째아이는 베트남에서 낳는 조건으로 이혼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마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이혼 뒤 베트남에 잠깐 쉬었다 오면, 전처와 결혼해 돈을 찾고 집도 사주고 아기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2005년 7월 너무 예쁜 둘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1주일 뒤 남편은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한 없이 냉정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남편은 “앞으로도 챙겨주고 아이들도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말을 믿은 저는 이혼 법정에 섰습니다. 남편은 이혼한 지 20여일 만에 전처와 다시 결혼했더군요. 이혼 한 달 뒤 첫째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죠. 그 뒤 남편은 전화번호도, 집도 바꾼 채 아이들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저는 만나볼 수 없는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0702.html

 

한겨레 | 기사입력 2007-07-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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