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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한글 모르는 다문화가정 엄마들 자녀교육 발 동동

박옥화 0 2,345 2008.11.12 14:00
한글 모르는 다문화가정 엄마들 자녀교육 '발 동동'
농촌지역 결혼이민여성 73% 한글ㆍ문화 몰라
서울 보광初, 다문화 프로그램으로 왕따 없애

◆다문화 가정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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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성북동 베들레헴 어린이집에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 3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태국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4세 쌍둥이 형제 영우와 영민(가명)이는 이곳에서 1년째 지내고 있다. 베들레헴 어린이집 원장인 권오희 세라피나 수녀는 "영우와 영민이는 부모님이 제대로 돌봐줄 형편이 되지 못해 언어 발달이 늦고 주위가 산만하고 자해 행위를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여 이곳에 맡겨졌는데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세라피나 수녀는 "하지만 이런 곳에 맡겨지는 아이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대부분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소외되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

= 12년 전 필리핀에서 전남 담양으로 시집 온 A씨(34)는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철수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봤다. A씨는 그 가슴 아픈 광경을 목격하고도 아들만 불러내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철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계속 반복된 일"이라면서 "내가 개입하면 친구들 놀림과 폭행이 더 심해져 아무 말도 못했다"며 "아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하소연했다.

따돌림도 문제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안산에 사는 미경이(가명ㆍ11)의 꿈은 선생님이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경이에게 그 꿈은 무척 멀어 보인다. 미경이 엄마가 숙제를 봐줄 만큼 우리말이 능숙한 것도 아니고 집안 사정이 학원에 보낼 만큼 여유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최근 초ㆍ중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가정 학생 7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3%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어렵고 친구들이 따돌리는 것도 힘겹다고 대답했다.

◆ 부모에 대한 교육 절실

= 8년 전 충남 논산으로 시집 온 필리핀 출신 S씨(34)는 엄마로서 아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부족한 한국어 실력이 고민스럽기만 하다. 언어 소통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공부를 가르쳐줄 만한 실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S씨는 "처음에는 학교에서 숙제를 들고 와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더 많으니 요즘에는 묻지도 않는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문화 가정 교육지원 차원에서 매주 한 차례 나와 아이 공부를 돕고 있지만 엄마로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S씨는 이 때문에 결혼 이주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이 절박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농촌에 사는 외국인 여성들은 농사로, 아이 키우는 일로 시간이 별로 없고 한국어 교육과 문화체험을 받으려면 1시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돼 한글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충남도가 지난해 도내 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72.9%가 한글과 문화체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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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로 시집 온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처음으로 고국에서 찾아온 부모, 형제를 만나 11일 오전 창덕궁 나들이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결혼이민자 부모 초청행사"를 개최했다.
◆ 학교도 '다문화 시대' 준비를

= 전교생 970명 중 35명이 다문화 가정 학생인 서울 보광초등학교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왕따'가 없다. 1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덕분이다.

이 학교는 우선 한국어가 미숙한 학생에게 1대1 결연 친구를 짝지어 주고, 방과 후에는 한국어반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 시간에는 우리말뿐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체험학습까지 실시하고 있다. 또 일반 학생에게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학부모들이 각 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학부모 명예교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학교 이만구 교장은 "일반 학생들도 세계 문화를 이해하고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아이들로 자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제2의 오바마를'…이주여성 의원만들기 프로젝트

필리핀인인 승근이 엄마 재스민 씨(32)는 여성부가 주관하는 '2010년 지방선거 제1호 결혼이주여성 의원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주여성들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오바마 프로젝트'다.

재스민 씨는 "승근이는 학교 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주여성 자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 아이들에게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이레샤 씨(34)도 한국 사회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러브인아시아'라는 TV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으며 안양시 복지회관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다. 하지만 세 살배기 딸과 여섯 살 아들은 고민거리다. 이레샤 씨는 "딸이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고 들어올 걸 생각하면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 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레샤 씨도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오바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몽골에서 온 이리용 씨(36)는 더욱 적극적이다.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 변화와 함께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3월부터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혼혈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로서 무척 설렜다"며 "한국도 우리 아이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 다문화 가정을 이끄는 엄마들을 정치권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10월에 시작됐다. 현재 이주여성 20여 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최근 들어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복지정책 수혜 대상자로서 관심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들이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한국인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아 주자는 의미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전문가 의견…가정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교육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 문제에 접근할 때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성배 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출신 어머니가 있는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버지는 교육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2중, 3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며 "어머니와 아이뿐 아니라 아버지도 상황을 인지하고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지원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또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후 중ㆍ고교에 들어간 뒤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격차의 누적'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학교 현장에 실질적으로 와닿게 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순 인하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동화시키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일반인에게 다문화적인 교육을 시키고, 문화 상대성을 이해하도록 범교과적으로 다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캐나다 호주 등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형규 기자/ 대전 = 조한필 기자 / 김기철 기자 / 광주 = 박진주 기자]


출처: http://new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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