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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키뉴스]딸 둘 낳고 생이별… 베트남 [씨받이 여인]의 슬픈 한가위

박옥화 0 2,251 2008.09.16 10:30

딸 둘 낳고 생이별… 베트남 ‘씨받이 여인’의 슬픈 한가위 


 
[2008.09.12 17:14]        
 


 

아기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며 젖을 달라고 입을 오물거렸을 아기.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앉고, 서는 것도 못 봤다. 뽀얀 속살에 깨끗한 눈망울을 지녔을 천사들. 엄마는 배를 찢는 고통을 겪으며 금쪽 같은 두 딸을 낳았지만 품안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생이별을 했다. 이제는 더듬더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엄마를 찾고 있을 아이들…. 엄마는 그렇게 아이 없는 추석을 네 번이나 보냈다.

 

◇한국의 그늘=베트남 새댁 투하(가명·24)씨. 그녀는 지금 이혼녀다. 이주민 100만명 시대. 한국 거주자 중 2%가 이주민인 시대에 조선시대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녀는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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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그녀는 꽃다운 열여덟 나이에 자신보다 서른살 많은 박모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20년간 살았던 전처와 이혼하고 투하씨를 만났다. 투하씨는 남편을 사랑했다.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외톨이였다. 길도 몰라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남편이 있었기에 든든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다. 2004년 11월 첫딸 소망이(가명)를, 2005년 7월 둘째딸 사랑이(가명)를 낳았지만 출산 후 신생아실에서 소망이와 사랑이를 딱 한번씩 봤을 뿐 그 후론 만나볼 수 없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지 못하게 했다.

괴로움에 눈물만 흘렸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방법도 없었다. 그녀는 자괴감에 산후우울증과 무기력,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불면증에 결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의 전처가 자신의 두 딸을 키우고 있었다. 남편은 전처와 20년 사는 동안 아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재산이 전처에게 있다며 투하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투하씨는 이혼할 수 없다며 울며 애원했지만 자신은 무일푼이라며 이혼을 강요했다. 현대판 '씨받이'였던 셈이다.

◇한국의 양지=결국 그녀는 이혼 당했다. 남편은 투하씨와 이혼한 지 한 달도 안 돼 다시 전처와 재혼했다. 남편은 베트남으로 잠시 돌아가는 그녀의 손에 2만달러의 돈을 쥐어줬지만 뿌리쳤다. 밤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투하씨가 인생의 4분의 1을 지낸 곳, 대한민국이 절망만을 안겨준 땅은 아니었다. 세계세린회(이사장 서영훈)가 운영하는 서울시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를 2007년에 만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센터의 도움으로 정신과 치료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소라미 변호사를 통해 그해 6월 서울지방법원과 서울가정법원에 각각 손해배상청구와 양육자변경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 변호사는 "남편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 양육권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한 상황"이라며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친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부모를 친부모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모친이 바뀔 경우 아이들이 겪을 혼란을 우려해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어요"=그녀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봉제공장 보조로 취직했다. 보증금 150만원에 월 30만원 하는 25㎡의 반지하 단칸방을 얻었다. 매일매일 힘겨운 나날이지만 투하씨의 소망은 단순하다. 두 딸과 같이 있는 것이다. "정말 아이와 같이 있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를 만나면 '제발 좋은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은 투하씨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지난 8월 말 베트남에 있는 부모를 모셔왔다. 그녀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단은 윈반베(64)씨와 판티련(60·여)씨의 항공료와 건강검진비, 체류비 일체를 지원했다. 세 명이 누우면 가득차는 좁은 반지하 방이지만 그립던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지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한국엔 나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 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번 추석만큼은 예전처럼 쓸쓸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녀는 딸을 빼앗겼다는 슬픔에 아직은 굳은 표정이지만 간간이 고마움의 미소를 짓는다. 재단 조석인 사무국장은 "투하씨와 부모님을 위로해 삶의 의욕을 북돋워주고 외국인 이민자들과 더불어 나누는 삶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지원사업을 펼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2박3일간의 제주도 여행도 배려했다. 그녀의 부모는 오는 29일 출국 예정이다.

한편 현재 투하씨의 전 남편은 입국 후 3일째 되는 날 아이를 낳아주고 이혼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투하씨가 동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당시 한국어-베트남어 사전을 펼쳐두고 단어를 짚어가며 의사소통을 했으며, 약속한 소정의 금전을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어떠한 잘못도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103212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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