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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씨 부부. 베트남인 부인의 한국행 거부로 평온했던 부부사이가 파경 직전까지 갔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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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시간 다 되어가는데 갑자기 "못 가겠다"
한국인 남편을 맞은 지 1년 된 베트남 여성 티엔(가명. 31). 지난 17일 친정 나들이를 마친 그녀는 탄손나트 공항 근처 호텔에 잠시 머물다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돌연 한국행을 거부했다.
50대인 그녀의 남편 송아무개씨는 한국어를 잘 모르는 호텔 종업원만으로는 돌발사태 수습이 어려웠던지 기자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객실을 찾았을 때 그녀는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송씨는 영문도 모른 채 답답한 지 가슴을 치면서 연신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친정까지 잘 다녀오고 나서 돌변한 그녀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이제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그런 남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스레 '이불말기 놀이'를 하는 결혼 1년차 그녀가 한국행 거부라는 배수진을 친 이유는 무엇일까.
1년 만에 속마음을 열 시간을 주자 그녀는 직설적으로 많은 것을 쏟아냈다.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친정 집 문제. 지난 5월 그녀의 여동생 결혼식에 왔을 때 집을 지어 주겠다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이번 친정 방문이 집 건축 때문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남편 송씨는 당혹스러워 했다. 2010년에 짓는다는 약속이 와전됐다는 것이다. 당시 베트남인 통역이 실수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에 땅을 사고 내후년에 집을 짓는 계획에 대해 다시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불신의 골이 깊어 보였다.
다른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용돈이 너무 적어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지 못한다는 금전적인 문제부터 주변 사람들이 따돌리는 것 같다는 심리적인 문제까지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또 남편이 운영하는 당구장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힘들다는 등 시종일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하룻만에 108명 선봐... 상점에서 물건 고르듯
송씨는 1년 전 수원에 있는 한 국제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재혼인 송씨는 베트남에 가서 마음에 드는 신부감이 있으면 결혼을 생각해 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와도 된다는 결혼정보회사의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5박 6일 일정으로 베트남에 도착한 송씨는 현지 모집책이 모아 둔 신부감들과 선을 봤다. 말이 선이지 상점에서 물건 고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송씨는 당시를 회고했다. 물론 법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는행위다.
"한 번에 6~7명의 베트남 신부감들이 들어오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릅니다. 하도 많아서 어지간한 선에서 됐다고 해도 현지 모집책은 막무가내로 끝까지 다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108명 정도 선을 본 것 같습니다. 이들 중에서 3~4명을 압축해 2차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교환합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 신부감들은 대부분 메콩강 삼각지대에서 베트남 모집책에 의해 모집된다. 한국 부잣집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조건에 수많은 베트남 처녀들이 모인다. 모집책은 1인당 10만원 정도 비용을 한인 브로커에게 받는다.
송씨의 부인도 같은 경로를 통해 모집된 경우다. 그녀의 집 역시 호치민에서 차와 배를 번갈아 타고 6시간 가량 가야 하는 오지다. 오랜 가난이 익숙한 그들에게 한국행은 가난 탈출의 비상구다. 그래서 송씨와 같이 25살의 나이 차이도 큰 문제 안된다. 간택이 우선인 것이다.
송씨는 맞선 다음날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여행경비만 들고 온 송씨의 결혼비용은 결혼중개업체에서 대납을 해 줬다. 매번 이런 식인 것이다. 호치민 시내에서 결혼식을 올린 송씨는 5박6일의 일정을 보내고 홀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송씨는 두 달 후 다시 베트남에 와서 신부와 함께 이곳 행정관청에서 인터뷰를 거친 후에야 해야 정식 부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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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개업체를 잘 선택하는 것이 안전한 국제결혼의 첫 단추다. 사진은 한국업체 관계자와 베트남 현지 중개업자가 베트남 신부 사진을 찍는 모습.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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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 많이 들었네요"
신부를 얻기까지 소요된 비용은 1220만원. 요즘은 베트남 물가 상승과 비행기 유류대 등 인상요인이 많아서 100만원 가량 올랐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 똑똑하고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한국말을 제법 빨리 배우는 것을 보고 역시 잘 선택했구나 생각했는데, 의부증이 심하더군요. 여자전화라면 일가 친척 전화도 의심해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송씨에게도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나이와 문화 차이, 그리고 언어의 장벽이 이들 부부를 시나브로 행복과 괴리된 생활로 몰아넣는 것이다. 현지 통역이 부인을 설득시키고 있는 중에 송씨는 한국의 결혼정보회사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혼하고 싶은 뜻을 내비쳤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국제결혼 가정이 파탄에 직면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아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오늘 여러모로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를 많이 들었네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혼하고 싶습니다. 오늘 함께 이 문을 나서지 않으면 진짜 이혼할 것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홀로 가방을 들고 나가는 송씨. 베트남 통역과 기자는 부인에게 마지막 기회임을 알려줬다. 그러자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티엔. 그녀는 송씨에게 2010년 친정에 새 집을 지어주는 것과 용돈을 올리고 핸드폰을 사주는 등 몇 가지 약속을 받아냈지만 잃은 것이 더 많아 보였다.
이들 부부에게 발견된 문제점은 한국과 베트남의 기본적인 문화차이, 25년이라는 나이 차이, 언어 장벽, 그리고 사랑의 부재라는 것을 통역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알게 됐다. 특히 이들 부부는 각각 가난의 돌파구, 성의 교환 도구로써 결혼이란 문제에 접근함에 따라 위험이 어느 정도 잠재해 있었다.
"베트남 부인 앞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
베트남 정부는 최근 한국 남성들과의 국제결혼으로 인해 파경을 맞는 사례가 많아지자 신랑 신부 나이차이가 24살 이상 날 경우 결혼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또 인터뷰 시 일정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출국을 허가하지 않는 등 자구책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등록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서만 국제결혼을 중매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뉴욕타임스>는 한국인 사위와 불과 1살밖에 나지 않아 못마땅해 하는 베트남 장인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통해 양국의 국제결혼 문제를 꼬집었다. 같은 해 5월 베트남 경찰은 베트남 여성 66명이 숨어 있던 집을 급습해 이곳에 함께 있던 한국인 예비신랑 2명을 붙잡았다. 신성한 결혼이 국제사회에서 희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혼이건 재혼이건 결혼은 분명 아름다운 결합이다. 특히 국제결혼은 인종통합과 다문화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 축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튼한 기둥이 될 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부실한 기둥이 될 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튼튼한 기둥을 만들려면 돈과 성의 결합보다 애정을 바탕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베트남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한 한인관계자는 "베트남 여성들은 사회적 책임도 강하고 그만큼 발언권도 강하다"며 "한국 남성들이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울 경우 다툼이 잦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당수가 사랑보다는 돈에 의한 결합이란 점에서 부인 앞에서 돈 자랑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며 "돈으로 애정을 사려고 하면 나중에 많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첫 번째 국제결혼 실패한 조씨, 두 번째는 성공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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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베트남 부인을 맞는 조씨는 국제결혼에서 언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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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에 사는 조아무개(41)씨. 결혼식을 막 마친 신혼이다. 그러나 신혼여행도 못 가고 호텔방에 종일 머물러 있다. 아직 법적인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같이 여행을 하거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기 어렵다. 함께 숙박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법에 저촉된다. 그러나 암묵지(暗默知)가 통하는 부분이다.
조씨는 이번 결혼이 재혼이다. 첫 결혼도 베트남 신부와 했지만 신혼 초부터 티격태격 하다가 1년 만에 이혼을 했다. 조씨의 첫 결혼은 결혼중개업소를 통했다. 그 때를 회상하면서 조씨는 중개업소의 행태에 분노했다.
"인터넷을 통해 신부 사진을 보고 결정해서 베트남에 왔는데 신부측 부모가 딸이 어리다는 이유로 1년 후에 결혼시키겠다는 겁니다. 웃돈을 얹어달라는 요구처럼 들려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했지만 결혼중개회사에서 집요하게 다른 여자들을 소개시켜 주더군요."
조씨도 기왕에 온김에 그냥 돌아가기 보단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결혼박람회'를 참관했다. 현지 언론은 한국인들의 이러한 선 보는 행위를 'Glass display at marriage exhibition'(쇼윈도 결혼박람회)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역시 단 수 분만에 신부감을 결정하고 다음날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에 대한 정보는 단지 이름 정도. 나머진 알아내기도 힘들고 별반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신부 친언니가 울산에 시집와 살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신부까지 조씨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국에 처형이 살고 있는 중요한 정보조차 모르는 결혼중개회사에 대한 조씨의 분노에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결혼중개회사는 성혼을 시켜야 큰 수익을 올린다. 때문에 기를 쓰고 성혼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신부에 대해서는 신분증 이상의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조씨는 지적했다.
"결혼은 했지만 말이 안 통해서 많이 답답했습니다. 둘이 마주보고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언어 장벽이 이렇게 힘들게 할 줄 몰랐습니다."
그의 부인은 오로지 그만 찾았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늦는 날이면 밥상을 차려 놓고 불을 끄고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는 한다. 그래서 회사 동료들과 회식 한번 제대로 못하고 집과 회사를 오갔지만 소통의 부재와 언어에 대한 해석 차이는 결국 파경을 가져왔다.
"친구들과 만나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조금' 있다가 들어간다고 하고 1시간 정도 후에 들어갔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왜 이제 들어오느냐며 독하게 대들더군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조금'이 의미하는 시간 차이가 달랐습니다."
당시 임신 중이던 부인은 조씨를 할퀴고 물어뜯는 한편 약물을 과다 복용하는 등 병적인 행동을 보여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에 도달했다.
조씨의 학습효과는 몇 시간 전에 맞은 두 번째 신부에게도 나타났다. 저녁식사를 위해 함께 나가자고 신부에게 권했지만 피곤하다고 드러눕더라며 신부 성격이 다소 강해서 못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조씨와 인터뷰는 저녁 대신 홀로 맥주로 배를 채우는 자리에서 이뤄졌다.
조씨는 "여자는 한국어를, 남자는 베트남어를 배우려는 노력과 실제로 열심히 배워서 언어를 통한 교감이 많아야 편안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언어가 가정을 지탱하는 것이 현재 직면한 다문화 사회의 숙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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