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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주여성 파경 급증 “비싼 돈 주고 사왔으니 내 맘대로”

박옥화 0 1,518 2008.07.08 09:41

 이주여성 파경 급증 “비싼 돈 주고 사왔으니 내 맘대로”
기사입력 2008-07-07 18:24 | 최종수정 2008-07-08 00:00

 

 

 

 

ㆍ“전화 잘 못받는다” 황당한 이혼 강요

국제결혼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5년새 이들 부부의 이혼 증가율이 5배 가까이 늘었다.

부부의 결혼생활 기간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소극적인 관심과 난립한 결혼중개업소의 엉터리 중매행위가 계속되는 한 문제는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가 수년째 외치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구호가 무색한 현실이다.

필리핀에서 시집온 ㄴ씨(27)는 황당하게도 “전화를 잘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했다. ㄴ씨는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2006년 인천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한 달여 동안은 큰 문제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문제의 발단은 어느날 남편 회사 사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남편에게 전해달라며 물건 품목을 불러줬는데 ㄴ씨가 이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만 것이다.

 

퇴근한 남편은 이날부터 “전화 통화도 제대로 못하면서 사람 구실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남편의 구박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몇개월이 지나 이혼을 요구했다. 경기지역의 한 이주여성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그녀는 이혼 이후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7일 이주노동자방송국에 따르면 한 농촌마을에 살던 이주여성 3명이 최근 한꺼번에 이혼을 당했다.

남편들이 내세운 이혼 사유는 단순하다. 농번기에 자기네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혼인을 하고 한국에 도착한 지 불과 15일 만의 일이다.

이혼조차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2월 결혼중개업소를 거쳐 중국에서 이주한 ㅈ씨(35)는 5개월 정도의 짧은 결혼생활 뒤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어느날 남편이 자신을 낯선 거리에 두고 사라졌다. ㅈ씨는 가까스로 집을 찾아갔지만 그녀를 맞은 것은 텅 빈 집이었다. 남편은 이미 이사를 간 뒤였다.

한국인 남편이 고의로 떨어져 살면서 “외국인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가출신고를 하면 6개월 후 이혼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온 ㅈ씨는 결국 이주여성쉼터에 머물다 지난해 8월 홀로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로 맺어진 결혼이민가정의 이혼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결혼생활 기간도 짧아지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의 이혼은 2007년 5794건으로 전년보다 44.5% 늘어났다. 또 이 중 4010쌍은 결혼기간이 채 4년을 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다문화사회에 대한 부족한 인식과 불법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이뤄지는 성급한 결혼을 문제로 지적했다. 김제이주여성쉼터 강중범씨(33)는 “중개업소에 많은 돈을 주고 결혼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한국 남성들의 인식 속에 ‘돈을 주고 사왔으니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며 “이런 인식으로 한국 여성에게라면 요구하지 못했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이어 “시어머니와의 갈등도 주요한 이혼 사유가 되고 있다”며 “가족간에도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권미주 상담팀장은 “이주여성들은 심지어 ‘청소를 안한다’ ‘밥을 안한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사유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20대 초반인 이들에게 한국에서도 이미 폐기된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결혼중개업소의 일방적이고 불·탈법적인 행위도 풀어야 할 숙제다. 권 팀장은 “결혼 과정에 외국인 여성의 선택권은 사실상 배제된다”며 “사람을 돈으로 따지는 중개업자들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정인·유희진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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