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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그들은 아다다인가

박옥화 0 1,459 2008.07.03 13:28

그들은 ‘아다다’인가?
기사입력 2008-06-23 23:03

 

말 못하는 ‘아다다’이지만 가져간 논마지기가 효자 노릇을 할 때까지는 그래도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이 어쩌다 돈을 벌자 이제는 매일처럼 매질이다. 할 수 없이 시집에서 쫓겨난 그는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는 것을 얻어 볼 수 없는 노총각’ 수롱이를 찾아간다. 수롱이에게는 아내를 얻으려고 십여 년 동안을 불피풍우(不避風雨) 품을 팔아 궤 속에 꽁꽁 묶어둔 일백오십 원이 있었다. 수롱이로서는 아다다를 아내로 삼으면 지금까지 모은 돈을 아내 사는 데 쓰지 않아도 되기에 좋고 아다다는 어차피 갈데없이 방황하다가 서낭당 길에서 만난 사람이기에 좋았다. 서로가 안성맞춤의 만남이었다. 수롱이는 어찌나 좋았던지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밭을 한 뙈기 사자! 내가 전답(田畓)을 사라구 묶어 둔 돈이 있거든”하고 보라는 듯이 실경 위에 얹힌 석유통 궤 속에서 지전 뭉치를 뒤져 내더니 손끝에다 침을 발라 가며 펄딱펄딱 뒤어 본다.

그러나 그 돈을 보는 순간 자기를 때리던 전 남편 생각에 아다다는 전율한다. 아다다에게 있어 돈은 “행복을 가져다 주리람보다는 몽둥이를 벼르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새로이 부임하는 임홍재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서 베트남의 응우옌 민 찌엣 주석이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생각난 것이 계용묵(桂鎔默)의 소설 백치 아다다였다.

“한국에 시집간 베트남 신부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한국정부와 관계자들이 도와주시오.”

우리가 베트남 신부들에게 어떻게 했기에 한 나라의 총리가 일국의 대사에게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그 베트남 총리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으면 사석도 아닌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절절한 마음으로 말을 했을까? 우리의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는 것 같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우리만 모르고 있는 일인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일인가? 부끄럽지만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언제인가는 열아홉 살 베트남 신부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소식이더니 이제는 아예 남편의 구타와 감금에 못 이겨 남편이 없는 사이 탈출하려다가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져 숨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필리핀 아내를 씨받이로 들여다가 아기를 낳게 한 후 쫓아내 버린 한국남자도 있었단다.

아무리 보아도 이들 외국여성은 계용묵의 아다다와 다를 바 없는 신세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이들 신부들은 아다다가 아니다. 시집갈 데가 없어 논마지기라도 싸들고 시집을 온 것이 아니라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고는 얻어 볼 수 없는 노총각’ 수롱이가 있다기에 시집 온 아름답고 일 잘하는 신부들이다.

아다다처럼 말 못하는 농아자(聾啞者)도 아니요 일만 거들면 그릇이나 깨는 천치도 아니다. 일하기로 하면 남편보다 잘하고 시부모를 모시기로 하면 한국여자보다 못할 것도 없다. 오직 자신의 의사표시를 우리말로 하지 못할 뿐이다. 아다다라고밖에는 아무런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말 못하는 아다다를 수롱이는 끔찍이나 사랑했다. 아다다가 아니고서는 수롱이는 아내를 얻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롱이와 똑같은 처지에서 동남아 여성을 신부로 맞아들였으면서도 우리의 노총각들은 수롱이만도 못한 사람들인가? 어디서 또 그만한 규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다다의 전 남편처럼 매일같이 구박인가? 집과 여자는 가꿀 탓이라는데 부끄러워도 너무나 부끄럽다.

이제 겨우 밥술이나 먹을 형편이 되니까 하늘 두려운 줄도 모르는 백성이 되고 만 것인가? 하늘을 이고 살면서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 없고서야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정책보다도 먼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정책이 앞서야 할 것 같다. 우리 정치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이 시끄러운 것도 결국은 덜된 사람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초대 환경부장관·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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