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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모자이크 코리아 (상) 방글라데시 남편 … 필리핀 아내 … “우린 한국인 부부”

박옥화 0 1,539 2008.05.20 10:24

 

 

모자이크 코리아 (상)

 방글라데시 남편 … 필리핀 아내 …

 

“우린 한국인 부부” [중앙일보]

미잔·주디 가족이 꿈꾸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우린 살고 싶은 나라로 한국 택한 한국 사람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사회’가 받아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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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다문화 사회’를 넘어 이민국의 문턱에 서 있다. 1990년 4만9000여 명이었던 외국인 체류자는 지난해 말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195개국에 이른다. ‘모자이크(mosaic) 코리아’다. 2020년에는 외국인 체류자의 비중이 5% 정도가 돼 ‘이민 국가’ 대열에 합류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자리를 잡는 등 질적인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결혼 이민자가 외국인 노동자와 재혼,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끼리 ‘한국인’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수천 명씩 모이는 국가별 공동체의 활동도 활발하다. 초기의 친목 도모 수준을 넘어서 자신들의 권리 신장을 꾀하는 정식 커뮤니티도 생겼다. 한국에도 ‘몽골 타운’ ‘스리랑카 타운’이 생길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변화들은 아시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역동적이다. 한국이 아시아의 이민국이 돼 가는 과정이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즐겨 먹는 한 가족이 있다. 그런데 남편은 방글라데시인, 부인은 필리핀계 한국인, 두 아이는 필리핀 혼혈 한국인이다. 이 독특한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무수히 탄생할 ‘새 한국인 가족’의 모습이다.

필리핀 여성 헤르난데스 주디스 알레그레(36·애칭 주디)는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1992년 한국으로 시집 왔다. 당시에는 결혼을 하면 바로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었다. 94년 1월 아들(황지훈·14)을 낳았고, 곧바로 그해 11월에는 딸(지영)도 낳았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실의에 빠져 살던 남편이 지병으로 2004년 세상을 떴다. 청천벽력이었다.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던 주디는 친구로 지내던 방글라데시인 모하마드 미자누르 라흐만(36·애칭 미잔)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2006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 사이 국적 취득 절차가 바뀌어 혼인신고 후 2년이 지난 올 3월에야 미잔은 법무부에 한국 국적 취득 신청을 했다. 심사를 통과하면 법적으로도 100% 한국인 부부가 된다.

지난달 16일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들 부부의 보금자리인 경기도 성남 분당의 한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라지만 방 한 칸과 작은 주방·화장실이 전부인 원룸 식으로, 가구라곤 침대와 TV·컴퓨터뿐이다. 곳곳에는 이들 부부의 사진과 지금은 필리핀에 있는 남매의 사진이 빽빽이 놓여 있다.

현재 미잔은 성남에 있는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주디 역시 성남에 있는 4곳의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국적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누구의 고향도 아닌 제3국 한국에서 사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둘은 한국어로 대화한다. 유창하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휴대전화 연결음도 신나는 한국 노래다. 미잔에게 전화를 걸면 최신 인기곡인 쥬얼리의 ‘One more time’이 흘러나온다. 집에서 즐겨 해 먹는 음식도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다. 그들 스스로도 완전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잔은 “ 젊은 사람들은 많이 변했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우릴 좀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당하는 차별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하더니 “ 우리 사회도 이제 여러 국적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사회’란 당연히 한국이다. 주디 역시 “요즘은 살고 싶은 나라를 자기가 직접 선택할 수 있지요. 우리는 한국을 선택한 한국 사람”이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날 아이 문제다.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아이잖아요. 그런데 사실상 한국인 피는 하나도 섞이지 않고, 생김새도 다를 텐데…. 우리 사회가 그 아이를 받아줄 수 있을까요?”

주디는 전 남편이 사망한 직후 남매를 필리핀의 외할머니에게 보냈다. 혼자서 비싼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더 필리핀에 가기를 원했다. 한국에서 거의 매일 느낀 차별 때문이었다. 미잔이 국적을 취득하고 이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지금보다 더욱 복잡한 한국인 가정이 탄생하게 된다. 90년대에 결혼 이주 여성, 외국인 노동자의 급격한 유입으로 외국인 수가 늘어나고 혼혈 자녀가 태어난 것을 두고 한국에도 다문화 사회가 열린 것이라고 평가한다면, 주디·미잔 가족은 다문화 사회가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인 노동자의 큰아버지’로 불리며 주디·미잔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했던 김해성 목사는 “지금까지 기혼자인 중국동포 중 몇몇이 한국인과 중혼을 한 뒤 국적을 취득하면 이혼을 하고 배우자를 불러들였던 사례가 있다”며 “그러나 주디·미잔 부부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 국적난민팀에 따르면 주디·미잔과 같은 상황에서 국적 취득을 기다리는 사례는 몇 건이 더 있다.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필리핀 출신 메리(35)와 2000년에 재혼한 네팔 출신 꺼멀(33)도 2005년 국적 취득 신청을 한 후 4년째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딸 크리스찬(7)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크리스찬은 한국인 피가 섞이지 않고 이름도 한국식이 아니지만 법적으로 완벽한 한국인이다.

기획취재팀=이승녕·이충형·송지혜 ·변선구 기자

◇모자이크(mosaic)사회=다양한 인종·언어·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개념. 이민국인 캐나다는 자국 사회를 ‘문화적 모자이크’로 부른다. 이민자들을 기존 문화에 통합 흡수하려는 ‘멜팅 팟(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개념과 달리 독립성을 중시한다. 다문화주의에 어울리는 용어로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 쓰이기도 한다.

 

 

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00&Total_ID=315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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