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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두개의 언어를 쓰는 다(多)문화 아이로 키워야

박옥화 0 1,809 2008.05.16 10:36
두개의 언어를 쓰는 '다(多)문화 아이'로 키워야" '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⑤
<끝> 이들을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좌담 입력 : 2008.05.13 00:53 / 수정 : 2008.05.1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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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0명이 넘는 이주여성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만한 숫자가 학교에 입학하고 있다. 이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만 1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지금껏 '숨어 있는' 소외계층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인종적 소수집단으로 소외될 수 있다. 이들의 문제에 대해 지금 대책을 세워 실행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사회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각 현장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온 권오희 수녀(베들레헴 어린이집), 민성혜 교수(남서울대학교 아동복지학과), 손소연 교사(안산 원일초등학교), 양승주 가족정책관(보건복지가족부), 오성배 연구위원(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민성혜 교수(이하 민)=작년 여름 만 4~7세 이주여성 자녀 165명과 엄마들을 만나 조사했습니다. 엄마 얼굴을 그리지 못할 정도로 모자(母子) 관계가 손상된 아이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어릴 땐 엄마가 들려주는 얘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데, 서툰 한국말로는 서로 의사소통도 힘듭니다. 아이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고, 커서도 엄마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오늘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는,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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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일 조선일보 회의실에 모인 권오희 수녀, 양승주 가족정책관, 민성혜 교수, 오성배 연구위원, 손소연 교사(왼쪽부터).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 ▲오성배 연구위원(이하 오)=대신 한국어 교육은 아버지와 사회가 맡아 줘야 합니다. 두 개의 언어를 쓰도록(bilingual) 키우는 것이죠. 미국에서도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학생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성적도 더 좋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도 확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거든요.

    ▲손소연 교사(이하 손)=2000년에 태어난 안산지역 이주여성 아이들이 올해 많이 입학해서 안산시는 난리였습니다. 어머니 국적은 다양한데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아이들의 학습 부진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학급 40명 중에 그 아이들만 돌보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두 개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는 다른 외국어도 배울 수 있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지 문화를 양쪽 다 제대로 이해 못하는 걸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주여성 아이는 지진아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이나 담당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연수 체계가 마련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승주 가족정책관(이하 양)=학교에 가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지도해 주면 안 됩니까"라고 물으면,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그러면 애들이 왕따당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공교육이 참 아쉽다고 느꼈어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따로 보충수업 받는 공교육 시스템이 정착돼 있으면 굳이 이 아이들이 눈에 띌 리도 없고, 따돌림을 당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어서죠.

    ▲손='역차별' 문제도 있습니다. 다문화 아이들만 보살피면 다른 한국 아이들이 역차별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쟤는 나하고 똑같은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데 선생님은 쟤만 돌본다"고 느낍니다. 학부모들이 항의하기도 합니다.

    다문화 아이들이나, 우리 사회 저소득층 아이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력지원도 급합니다. 봉사자한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돕고 싶다는 마음은 좋지만, 책임감이 부족해서 쉽게 일을 빠지고 그만둡니다.

    자기를 가르치고 돌봐 주던 선생님이 어느날 말도 없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크게 상처받습니다. '다문화 시대'에 맞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교사와 보육 지원자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제주에서는 정년 퇴임한 교사들을 활용했더니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민=언제 누가 가더라도 일정한 과정을 밟아 가르칠 수 있도록 모든 프로그램을 '매뉴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아이가 도시에 있느냐 농촌에 있느냐에 따라 '도시형', '농촌형'으로 나눠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문제는 사회적 뒷받침입니다. 아이들이 제때 보육시설만 가도 문제의 80%는 해소된다고 봅니다. 이주여성 엄마들과 자녀들이 많은 농촌지역에는 특히 보육시설이 모자랍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못 간다면 그 부분은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무상교육' 얘기도 나옵니다. 아무튼 가장 우선순위는 아이들에게 공적인 교육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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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오희 수녀(이하 권)=저는 이주여성 자녀들에 대한 '무상교육'에 반대합니다. 공짜면 제대로 교육을 안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비용은 자기가 부담하게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전에는 어디든 갈 때 처음에는 다 공짜로 데리고 갔어요. 그러니까 이 여성들이 '내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약속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단돈 1만원이라도 내면 '내 돈 냈으니까 악착같이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어요.

    ▲손=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공짜로 무엇이든 해주니까 정서에도 안 좋더라고요. 공짜로 배우면 안 해도 되는 줄 알고 그래요. 처음엔 돈을 약간이라도 내게 하고 그 다음 무료로 해주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서 갚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오=일반 학부모들이 이주여성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니까 '그 아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80%인데 '그 아이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내겠다'는 응답은 10%였습니다. 표면적 의식에서는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찬성하지만 잠재적 의식에서는 절대 내가 그것 때문에 손해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권=정부 부처들마다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언론이 떠들어 주잖아요. 행사를 어떻게 하고 몇 백 명이 오고…. 그러니까 일반 서민들은 뭐라고 생각해요. '우리 세금을 받아서 너희들에게 퍼준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엄마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3000만원이 없다고 국적취득 신청 자체를 안 받아 줘요. 잘살려고 노력하는 가정인데 3000만원이 없다고 그러는 게 너무 답답합니다. 제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전화했더니 "수녀님이 무슨 권한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고 해요. 이벤트만 하지 말고, 정말 어떤 방향으로 이 사람들을 지원할 건지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법무부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다 그래요.

    ▲손=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한국 아이의 부모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깜둥이'라고 부르면, 그 자녀들도 다문화 가정 자녀를 '깜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인 가정의 일반 학부모들을 위한 교육도 상당히 필요합니다. 동남아시아를 낮춰 생각하는 것이 은연중에 자녀들한테 그대로 배거든요.

    ▲오=지난해 여성정책연구원에서 성인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20대에 가까울수록, 고학력일수록 다문화와 유색인종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사실 이들이 여론 주도층이지요. 그러니 아직 소수인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니고,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키면 바꿔 나갈 수 있습니다.

    ▲민=역할 모델이 될 만한 이주여성 자녀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남아 출신 엄마를 둔 아이들 중에는 색깔 감각이 특별한 아이들도 많았어요. 다채로운 색을 써서 그린 그림이 놀라웠죠. 아이들이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들이 크게 성공하면, 이주여성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없앨 수 있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을 주니까요.

    ▲오=일본의 게이단렌(經團連·일본의 전경련) 회장은 2006년에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다문화 가정을 지원해라. 재원이 부족하면 게이단렌이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여성들이야말로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는 겁니다.

    이들이 잘살아야 일본 내수경제가 살아나고, 다문화 배경을 가진 2세들은 국제화 시대의 중요한 인재라는 거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우리 후손들이 심각한 문제를 겪게 하지 않으려면 지금 진입단계에서 의식 변화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민=이상적인 상황은 이런 것이지요. 이 아이들이 '다문화'라는 이름표가 필요 없을 만큼 그냥 잘사는 것, 이런 대담이 필요 없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인식 전환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다문화 아이들뿐만 아니라 장애아나 이런 아이들도 다른 한국 엄마들 때문에 너무 상처를 많이 받거든요.

  • 베들레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권오희 수녀, 민성혜 남서울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안산 원일초등학교 손소연 교사, 양승주 보건복지가족부 가족정책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오성배 연구위원이 지난 6일 저녁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에 모여 대담을 가졌다. /이명원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13/20080513000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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