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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애는 커가는데… 엄마 말문 트일 만하면 교육 끝"

박옥화 0 1,481 2008.05.13 11:01
'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애는 커가는데… 엄마 말문 트일 만하면 교육 끝"

④ 5개월로 끝나는 한국어 수업
급조된 지원책… 경험 부족한 단체들이 맡기도
학생 자녀 1만명 넘는데 교육부 전담 인력 1명
이길성 기자(팀장) atticus@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지혜 기자 wis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영민 기자 ym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4년 전 전남의 한 소도시로 시집온 베트남 출신 후이닌(가명·23)씨는 올 3월부터 가정방문 교사한테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이주여성 지원책의 하나다.
한국말을 배우고 싶었지만 아기(3)를 보느라 여유가 없었던 그녀는 이제 '소쿠리' '주걱' 같은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그녀는 "애가 크기 전에 빨리 배워야 한다"며 열심이다.
하지만 후이닌씨의 '5개월짜리' 한국말 수업은 7월이면 끝난다. 그녀는 어설픈 발음으로 "아직 잘 몰라요. 더 배워야 해요"라고 해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를 가르치는 양모(여·40)씨는 "5개월 배우고 관두면 다시 제자리"라며 "규정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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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배우다 끝나면 다시 제자리"

한국말 수업은 이주여성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것이다. 어린아이는 대부분 엄마를 통해 배운다. 이주여성도 생업에 쫓기는 남편을 대신해 어린 자녀를 홀로 길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말이 서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말이 늦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전국 80곳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들이 예산의 대부분을 들여 방문교사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말 방문수업 기간이 딱 5개월. 그것도 일주일에 2차례, 한 번에 2시간씩이다.

일 년 중 3~7월, 8~12월에 진행되는 이 한국말 수업은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더 교육을 받고 싶어도 연장이 되지 않는다. 결국 80시간의 한국말 수업으로, 이주여성들은 한국인의 엄마와 아내로서 무리 없이 살수 있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다.

하인스 워드 방한 이후 지원책 급증

거의 전무했던 정부의 결혼이민자 지원정책은 2006년을 기점으로 양적으로 급팽창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들이 충분한 실태조사를 거쳐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이주여성 문제와 관련해 국무회의를 처음 연 것이 2005년 8월. 이후 두 차례 더 회의가 열렸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2월 하인스 워드가 미국 프로미식축구 MVP에 오르고, 4월에 방한해 '혼혈'에 대한 언론보도가 쏟아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당시 하인스 워드가 혼혈 청소년들을 만나 지원 약속까지 하자, 그런 역할을 했어야 하는 정부의 '체면'이 구겨진 것이다.

그 이후 대통령 주재로 회의가 개최됐고, 한국말과 양육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른바 '원스톱(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센터' 개념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21곳이 그해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충분한 현장조사와 예산 확보가 안되니 '5개월로 끝나는 한국어 수업'이 생기는 것이다. 센터당 3억원 안팎의 방문교사 사업예산도 '이주여성 지원' 명목이 아닌 사회적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배정된 상태다.

◆전문성 없는 일부 단체가 센터 운영

작년까지 이주여성 지원책은 농림부, 여성가족부, 문화관광부 등 각 부처별로 분산돼 있었다. 중복이 많다는 비판에 따라 올해부터 관련 사업들은 보건복지가족부가 통합해서 운영하는 쪽으로 정리됐고, 올해 80개로 늘어난 지원센터들이 그 창구가 된 것이다.

중앙정부가 50~70%, 지자체에서 30~50%의 예산을 내 운용하는 센터는 지자체가 민간에 맡겨 운영한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는 이주여성 지원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전문성을 쌓아온 단체 대신 지역사회에 정치적 영향력이 큰 시민·종교단체나 퇴직 공무원이 대표로 있는 기관 등에 맡기고 있다.

경험이 없는 이들 단체 중에서는 이주여성과 자녀와 관련한 일이 생길 때마다 다른 지역센터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등 제대로 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곳도 있다.

◆손 놓은 교육부

학교에 다니는 이주여성 자녀들이 이미 1만 명을 훌쩍 넘겼는데도 교육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전담인력이라고는 평생직업교육국 잠재인력정책과에 사무관 1명이 전부다.

이주여성 가정 자녀들이 어느 학교, 어느 학년에 몇 명이나 되고 다른 학생들과 이들의 학력 격차는 얼마나 되는지, 차별과 소외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전혀 정보가 없다. 이주여성 자녀들을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교사들에 대한 지침이나 교육은 당연히 기대할 수가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12/20080512000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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