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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한국 아줌마 주디스의 꿈

박옥화 0 1,624 2008.05.08 11:45

 

 

 

<시론>
‘한국 아줌마’ 주디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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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총선에서 비록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뒤늦게라도 주목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필리핀 출신의 이주 여성 헤르난데즈 주디스 알레그레(36)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7번을 배정받아 18대 총선에 도전, 사상 최초의 외국계 출마자로 기록됐다.

그도 여느 후보와 마찬가지로 선거운동 기간중 당당하게 전국을 돌며 지원 연설을 했다. 새벽 6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다리가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뛰어다녔다. 그가 이토록 뛰어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진정한 한국인으로 인정하면서 ‘토종 한국인’이 보낸 격려와 박수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두터운 편견에 대한 힘겨운 도전이기도 했다. 왜 외국인이 설치고 돌아다니느냐며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을 의식해야만 했다. 물론 ‘예상대로’ 금배지를 달지는 못했다.

비록 중소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이긴 하지만 그의 출마는 신선한 충격이다. 국내 최초 외국계 출마라는 기록과 함께 한국이 다민족·다문화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는 점에서 그 상징적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선거기간중 신발이 닳아 새 것으로 갈아신은 것도 어쩌면 그 상징성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주목하고 싶지 않지만 주목해야 할 일이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지난달 국제결혼을 당분간 금지키로 발표한 게 그것이다. 캄보디아는 그 배경으로 “조직적인 인권유린 사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캄보디아 여성 7명이 한국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해 귀국했다”고 밝혔다. 말이야 우회했지만 결국 한국 때문에 국제결혼을 금지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에는 베트남 주석까지 나서 “베트남 신부들을 잘 대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기까지 했다.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이주 여성에 대한 홀대와 차별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언급까지 나왔을까. 시집에서 구박받는 딸을 둔 어버이 심정으로 헤아려 보면 더 없이 딱한 노릇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필리핀 출신 주디스씨의 출마와 캄보디아·베트남 등 두 ‘사돈 국가’의 읍소와 불만은 다민족·다문화로 접어든 한국인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만약 주디스씨가 국회에 진출했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그 파급 효과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국계가 역으로 외국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간단하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을 포용하는 데 이보다 더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방법도 드물 듯싶다. 더구나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 등은 ‘한강의 기적’을 본받고자 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피로 맺어진 ‘사돈 국가’가 될 수 있다.

다민족·다문화 현상은 어차피 국력이 강해지면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이미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민족에서 다민족·다인종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지난해 말 외국인 주민은 106만여명이며 8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면서 농촌 총각 4명 중 1명이 외국인을 신부로 맞이하고 있다.

다민족·다문화가 한번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면 좀 더 가슴을 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에 따라 마지못해 최소한의 면피성 인권보호 차원에만 급급해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자면 앞으로 각 정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이들 외국계 출신 한국인을 한 명쯤 추천하는 것은 어떨까. 한국 거주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직능대표로서의 자격도 충분하다. 그게 ‘선진·실용’의 정치·외교이며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한국의 경쟁력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 비례대표 공천헌금 잡음에 비춰보면 더욱 비교할 바가 아니다.

4년 전 한국인 남편과 사별하고 1남1녀를 키우는 ‘한국 아줌마’ 주디스씨. 그의 꿈이 현실화하는 날 한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의 자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과거 한민족 울타리를 넘어 ‘다문화 가정의 달’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호 / 논설위원]]

기사 게재 일자 2008-05-07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5070103383704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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