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새댁들, 힘들땐 전화하세요"
한국생활 2~9년차인 베트남 아줌마들
'시집살이' 고민 상담해주는 멘토로 활동
김재곤 기자
truman@chosun.com 입력 : 2008.04.02 23:28 / 수정 : 2008.04.03 07:07
- "지금 임신 중인데 한번은 집에 혼자 있을 때 배가 너무 아팠어요. 남편은 전화도 안 받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럴 땐 '119'로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하세요. 한국말로 얘기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앞으로 저한테 연락하세요."
2일 오전 11시쯤 서울 영등포의 인구보건복지협회 3층 회의실에서 귀에 설은 베트남어가 흘러나왔다. 회의용 책상에 마주보고 앉은 6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종이에 인쇄된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상대방과 베트남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2일 충남 아산시와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설 결혼지원센터가 임명한 일명 '사랑의 멘토'들이다. 앞으로 KTX 천안·아산역사 내 가정결혼상담센터에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아산시 일대에 거주하는 이주 베트남여성들의 고민상담을 해주게 된다.
현재 아산시에는 총 353쌍의 국제결혼 가정 중 83쌍이 한-베트남 커플로, 중국 다음으로 많다. 아산시청 가정복지과 송명희 과장은 "경험 있는 멘토들이 한국 결혼생활의 고충을 베트남어로 직접 상담해 줌으로써 베트남 새댁들의 조기 적응을 돕자는 취지"라며 "상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전문가에 의뢰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열린‘베트남 이주 여성을 위한 사랑의 멘토 발대식’에서 멘토로 참가한 베트남 이주 여성들이 자녀들과 함께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고 밝게 웃고 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총 7명으로 구성된 사랑의 멘토는 한국 결혼생활 2~9년차인 아산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아줌마'들이다. 멘토의 맏언니 격인 오안희(37)씨는 결혼 생활 9년을 포함해 한국 생활만 13년째다. 두 아이의 엄마로, 작년부터는 매주 한차례 자동차 면허시험을 보려는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경찰서에서 필기시험 강의도 한다. 오씨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 문제"라며 "말이 제대로 안 통하다 보니 오해가 생겨도 풀지 못해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날 상담한 내용 중 상당수가 남편, 시댁 식구들과의 의사소통과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특히 나이든 시부모들이 며느리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 이해 못해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5년차 주부인 장윤아(28)씨는 유창한 한국말로 "결혼하고 처음 3년 동안은 주로 집에만 있다 보니 대충 한국말을 알아듣긴 해도 말은 도무지 안 나오더라"며 "한국 말을 빨리 익히려면 가족 외에 많은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말문을 틔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정(23)씨는 "베트남 남편들은 가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가사 일도 분담하지만 한국 남자들은 바깥일에만 신경을 쓰지, 집안일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옆에서 누엔티엔번(27)씨가 "술도 너무 많이 마셔요"라고 거들자, 백번 공감(共感)한다는 듯 일제히 웃음보가 터졌다.
이웅진 결혼상담센터 소장은 "우선 아산 지역을 중심으로 상담을 해나가겠지만 점차 멘토 숫자와 상담 대상지역을 늘려나갈 것"이라며 "베트남 외에도 다양한 원어민 상담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출 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