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야만성이 19세 신부를 죽였다” |
한국 시집온 베트남 신부의 죽음, 판사도 울었다 |
대전고법, 애틋한 신부 편지 공개하며 한국 사회 질책 “법원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 사람과 결혼해 이역만리 땅에 온 후,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돼 19세의 짧은 인생을 마친 베트남 신부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최근 베트남 출신 19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OO(47)씨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특히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은 베트남 신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겐 없었느냐”고 자성의 질문을 던지며 우리사회의 야만성을 질책하고, 하늘나라로 간 베트남 신부에게 용서를 구해 눈길을 끌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베트남 19세 신부의 사망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 사건은 이렇다. 장씨는 2006년 12월23일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비 1000만원을 주고 A(여·19)씨를 만나, 이날 결혼식을 올린 뒤 먼저 한국으로 입국해 지난해 1월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5월16일 입국해 천안에서 장씨와 부부로 살았는데, 장씨는 A씨가 자꾸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고 사기결혼이라는 의심과 함께 결혼생활에 불만을 품게 됐다. 그러던 중 6월26일 동료들과 회식을 가진 뒤 귀가한 장씨는 A씨가 가방에 여권과 옷을 꾸린 채 외출복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이에 장씨는 베트남어로 결혼을 의미하는 ‘캐톤’이라고 물었는데 A씨가 ‘아니오’라고 말을 하며 집을 나가려하자 화가 났다. 장씨는 결혼을 위해 전 재산에 가까운 1000만원을 투자할 정도로 A씨와의 결혼생활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사건 전날인 25일 A씨는 그동안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남편이 다른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하기를 빌면서 자신은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베트남어로 남겼다. ◈ “베트남에 돌아가게 되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좋은 여자 만나세요” 재판부가 이를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가슴을 더욱 여미게 만들었다.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에서 A씨는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남편이 어려운 일 의논해 주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내를 제일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당신의 일이 힘들고 지친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저도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나중에 더 좋은 가정과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당신은 아세요?”라고 아픈 감정을 드러냈다. 또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 잠은 잘 났는지 물어보고 싶어요”라고 애틋한 마음도 나타냈다. 그러면서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를 바랬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행복한 삶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누가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라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아울러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을 말하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물론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라며 의젓함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단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을 바랬을 뿐이에요. 하지만 제가 베트남에 돌아가게 되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저 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당신이 잘 살고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래요”라며 비록 헤어지면서도 남편에 대한 사랑도 표시했다. 끝으로 “베트남에 돌아가 부모님을 위해 다시 처음처럼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의 희망은 이제 이것뿐이에요.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뿐이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겠어요. 정말로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어요. 당신이 이 글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라고 맺었다. ◈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편지를 통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어를 빨리 배워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동기를 시작했으나, 피고인의 배려 부족과 언어문제 등의 어려움으로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했고, 무관심과 통제로 인해 따뜻한 가정은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끝에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이에 피고인이 사기결혼을 했다고 오해한 것이 범행의 주된 원인이 됐고, 거기에 피고인의 피해망상적 사고와 음주 중 폭력 습벽이 더해져 살해한 것”이라며 “비록 범행이 계획적이거나 의도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피고인의 이런 그릇된 성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상당한 기간동안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판부는 비극이 발생한 근본 원인 졸속 국제결혼에서도 찾았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한국 남성과 제3세계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국제결혼의 명암을 재조명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배우자감을 찾을 처지가 못 돼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베트남에서 졸속으로 피해자를 만나게 된 모든 과정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단 몇 분만에 배우자감으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누구 집 자식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 준 바 없었고, 목표는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일 뿐, 그 이후의 뒷감당에 관해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러한 지탄을 피고인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며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발로”라고 한국사회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며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아온 그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인지. 19세의 편지는 오히려 어른스러워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고 숙연함을 보였다. 이어 “이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소망을 해 보는 것도 이러한 자기 반성적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2008/03/30 [23:09] ⓒ브레이크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