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터뷰] "돈 주고 외국서 아내 사왔다는 잘못된 생각 바꿔야"
이주여성 긴급전화 1577-1366 센터장
이항수 기자
hangsu@chosun.com
입력 : 2008.03.16 22:51 / 수정 : 2008.03.17 06:51
- 30평 남짓한 사무실의 맨 안쪽 상담실 벽에는 가로·세로 1m가 넘는 큼직한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그 양쪽 부스에는 외국 여성 6명이 헤드셋을 양쪽 귀에 꽂은 채 조금은 생소한 언어로 전화하면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숭인동 신설동 로터리 부근 동보빌딩 306호 '이주여성 긴급전화 1577-1366' 사무실.
이곳으로 안내해준 강성혜(姜聖慧·58) 센터장은 "베트남어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 태국어 영어 등 6개 국어로 매일 12명이 8시간씩 교대로 상담한다"고 말했다.
19세 베트남 신부 후안마이씨는 작년 6월 충남 천안의 지하 셋방에서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진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46세 남편 장모씨였다. 입국해 신방을 차린 지 두 달도 못 돼 남편에게 맞아 죽은 것이다.
이곳을 찾은 계기가 된 이 사건부터 물었다.
―후안마이씨를 살해한 한국인 남편에 대한 판결 소식을 엊그제 들으셨죠? 이주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느낌이 남다를 텐데….
"뉴스를 보다가 눈물이 났어요.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녀는 이 대목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후안마이씨나 남편이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인까지 갔을까. 우리가 이주여성들의 가정생활 속속들이 들어가서 도움을 주지는 못하잖아요. 매번 그게 안타깝지요."
―대전고법 김상준 부장판사가 한국인 남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 '다 함께 반성하자'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타국 여성들을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는 인성(人性)의 메마름과 어리석음이 이런 파국을 불렀다. 경제대국·문명국의 허울에 갇힌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한다'고 했다.
"돈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물질주의적 사고 때문에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물질이 없는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편견을 갖잖아요. 우리 사회의 이런 잘못된 모습이 고스란히 이주 여성들에게도 전이되면서 그들도 고통을 당하는 겁니다."
―국제 결혼한 여성들이 모두 이렇게 차별 당하지는 않습니까?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내면의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나요.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제1세계' 여성들은 거의 차별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보다 못산다는 동남아 등 '제3세계'에서 온 이주 여성들은 심하게 차별을 합니다. 동남아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은 서로를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 여성의 외모만 보고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거예요. 그 여성이 어떻게 자랐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러고는 일부 못된 남편들이 '돈 주고 사왔는데 왜 안 따르느냐'고 생각해요. 이게 문제의 씨앗이에요."
- 한국인과 국제 결혼한 여성들을 돕는‘이주여성긴급전화 1577-1366’의 센터장 강성혜씨가 전화를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 ―한국 남자들이 특별히 문제가 많습니까?
"뭐랄까, 존중하는 마음이 적어요. 처음엔 마음에 없어도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이주 여성에게만 요리든 언어든 뭐든 빨리 배우고 익숙해지기만 바라지요. 남편도 가족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 안타까워요."
―상담원들은 어떻게 뽑습니까?
"먼저 국제 결혼한 여성들 중에 한국어도 잘 하고 자국에서 공부도 많이 한 사람들에게 상담 훈련을 시켜요."
―상담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습니까?
"그럼요. 상담을 하면서 상대방 사연들을 항목별로 기록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통곡을 하면 못 물어보거나 함께 울다가 기록을 못하는 거예요. 오랜만에 자기 나라 말로 사연을 풀어놓으니 속이 후련할 때도 있고 감정 통제를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저쪽은 통곡하고, 이쪽도 울고…."
―한 번 상담하는 데 보통 얼마나 걸립니까?
"전화로는 보통 20분, 30분씩 해요. 여기에 찾아와 면접 상담을 할 경우에는 보통 2~3시간 걸려요. 5시간을 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 화해하고 노력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지요."
―기억에 남는 상담자가 있습니까?
"경남에 사는 부부인데 여기까지 찾아와 상담을 했는데 돌아가서 사과 한 상자를 보내준 적이 있어요. 화해하고 잘 살기로 서로 약속했거든요. 제 평생 가장 맛있던 사과였어요."
―연간 상담 건수가 몇 건이나 됩니까?
"작년에 1만3277건을 상담했는데, '가족 갈등'이 20.20%로 가장 많았고, '통역 요청'이 19.18%, 이혼이나 양육권 문제 등 법률 상담이 13.99%, 체류문제 상담이 8.86%, '가정 폭력'도 7.35%나 돼요."
―어느 나라 출신이 많습니까?
"베트남이 42.94%로 절반 가까이 돼요. 다음이 중국 25.55%, 몽골 13.53%, 러시아 8.14%, 필리핀 3.19%, 태국 2.47%입니다."
―실제 국제결혼 건수로는 중국이 세 배나 많은데 베트남 출신의 상담이 월등히 많은 이유가 있습니까?
"중국인 중에는 조선족이 많으니까 의사 소통의 문제가 적어요. 하지만 베트남 여성들은 영어나 한국어를 잘 못해 초기 정착 때 어려움이 많아요. 또 베트남 여성들에게는 우리 센터가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웃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없을까요?
"연말에 결혼중개업관리법이 통과돼 올 6월부터 시행됩니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신랑과 신부의 정보를 거짓으로 알려줬다든지 업체가 중대한 잘못을 했을 때에는 함부로 영업할 수 없게 벌칙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 이주 여성이 입국 심사를 받을 때부터 단계별로 지원하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의 가족 생활 문화, 일반 생활, 구체적으로는 세탁기 사용법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남편들도 외국인 배우자와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권 피해 상황이 일어날 때에는 보호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좀 더 확보돼야 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아이가 한국어와 엄마의 모국어를 동시에 배우면서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빠와 가족들이 다 함께 도와줘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 많을 텐데….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등 '다름'에 대해 차별하는 경향이 있어요. 앞으로는 다름을 서로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이걸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내면 이주여성이든 이주노동자든 우리 사회에 소외계층이 없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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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1366 전화는
"1년 365일 하루 한가지씩 돕자"는 의미 담겨
'이주여성긴급전화'의 뒷자리 1366은 "위기에 처한 여성들에게 1년 365일에 하루 더 도움을 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전국 시도에 이미 여성들을 위한 1366 긴급전화가 있어서 이 센터(홈페이지는 www.wm1366.or.kr)에 직접 연결하려면 반드시 1577을 먼저 누르고 1366을 눌러야 한다. 이 센터는 여성가족부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위탁해 2006년 11월 설립됐다.
강성혜씨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04년 2월~06년 7월)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상담하다 갑자기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의 문제가 급증하고, 여기엔 의사소통의 문제가 심각하게 작용한 것을 알고 통역을 겸한 상담센터를 세우게 됐다고 한다.
강씨는 한신대 신학과를 나와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여성장애인과 이주여성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