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대국 허울 속 야만성 부끄럽다”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대전 고등법원의 1월23일 판결문 이 한 대목은 ‘외국인’ 100만명과 함께 살아가는 다인종, 다문화 한국사회의 반성문이자 자계훈(自戒訓)이라는 것이 우리 시각이다. 재판부는 2006년 12월 결혼한 베트남 출신 19세 신부가 40대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고국으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지난해 6월 귀국마저 막고 폭행해 숨지게 한 남편을 중형으로 단죄하면서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짧은 인생을 마치고 낯선 땅에서 숨져간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기 위해 피해자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구절까지 판결문에 인용하고 있다. 가해자를 대신해 ‘참회록’을 쓴 재판부는 이어 ‘타국 여성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을 준열히 꾸짖고 있다.
한국사회의 한 단면으로 정착된 국제결혼 가정 가운데 배우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또 그에 앞서 결혼의 진지함이 결여된 ‘매매혼’의 후유증 등으로 파탄, 파경을 맞는 사례가 그리 드물지 않다. 2월6일 경북 경산시에서 입국 1주일 만에 협의 이혼에 합의한 베트남 출신 신부가 아파트에서 추락사해 그 사인을 둘러싼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극단 사례다.
대법원이 호적예규 제715호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의 혼인에 관한 사무지침’을 만든 것은 2006년 7월21일, 또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주석이 “베트남 신부들을 잘 대해 달라”고 호소한 것은 지난해 10월30일의 일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사람사는 정을 위해 “오로지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 뿐, 뒷감당에 관해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피고인만을 지탄할 순 없다”고 한 재판부의 지적을 한국사회가 가슴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기사 게재 일자 200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