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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베트남 주부들의 수화기속 큰언니(종합)

박옥화 0 1,513 2008.02.18 17:11

<사람들> 베트남 주부들의 수화기속 '큰언니'(종합)
연합뉴스|기사입력 2008-02-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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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베트남여성센터 상담팀장 하 티하이엔씨

"지나친 한국어 '원어민' 수업 오히려 역효과"

(대구=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베트남 주부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고민이요? 당연히 남편과의 의사 소통 문제죠. 한국어 교습소가 많지 않느냐고요? 어휴, 말도 마세요"

대구지역 시민단체인 베트남여성문화센터(VWCC)에서 전화 상담 팀장으로 일하는 하 티하이엔(39.여) 씨.

10대 후반∼20대 초반에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새댁들의 다양한 고민을 전화로 상담해줘 주부들 사이에선 얼굴은 모르지만 목소리는 다 아는 '큰 언니'로 통한다.

언어 장벽을 베트남 주부들의 가장 큰 고민으로 꼽은 그녀는 한국어 학습의 걸림돌로 '지나친 원어민 수업(?)'을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회관에서 열리는 한국어 교실에 가도 대다수의 경우 초급 과정부터 베트남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 선생의 수업을 들어야 하고 말은 억지로 따라해도 단어의 의미와 맥락을 모르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18일 대구 달서구 두류2동 VWCC 사무실에서 만난 티하이엔 씨는 "이런 고충을 이해하는 선생이 있는 곳은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고 말했다.

"실제 상담에서 들은 얘긴데 한 주부는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뜻을 구분할줄 몰라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이웃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오해를 샀죠. 초급 한국어는 차라리 베트남인이 베트남어를 섞어 차근차근 가르치는 게 나아요. 한국에서 오래 산 베트남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한국인과 결혼해 대구 근교에서 11년을 산 티하이엔 씨는 시집을 오기 전에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지한파'였다.

고향인 베트남 중부 냐짱(Nha Trang)시를 떠나 호치민시에서 5년간 한국 회사 직원으로 일했다. 남편은 그때 만나 2년을 사귀다 결혼했다.

당시 그녀에게 한국은 "성격 급하고 외국인에게 소리 잘 지르는 사람들의 나라"에 불과했다.

직장생활에 부대끼는 한국인 동료들의 모습이 그대로 박힌 셈. 그나마 결혼 뒤엔 시댁 식구들의 소탈한 정(情)에 반해 적응이 빨랐다고 한다.

그녀는 "대다수 베트남 신부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잘 사는 좋은 나라' 정도의 생각만 갖고 온 뒤 이래저래 실망을 하게 되는데 내 경우는 완전히 정반대였다"고 웃었다.

티하이엔 씨는 VCWW에서 베트남인 상담원 2명과 함께 하루 평균 50여 통의 전화를 받는다. 남편이 '사장님'인줄 알고 시집 왔는데 알고 보니 빈털터리라며 한숨을 쉬는 새댁부터, 아이를 갖고 싶은데 전처와의 자식이 이미 있다며 남편이 임신중절을 요구한다는 결혼 수년 차 주부까지 다양한 사연을 듣는다.

"국제 결혼이 별 것 입니까. 사람과 사람의 문제죠. 외국인이라고 가정사를 숨기거나 '아무 것도 모른다'고 무시하면 주부들에겐 큰 상처가 되요. 우리 신부들도 한국에 살 준비가 전혀 안 돼 걱정입니다. 결혼 전 베트남에서 미리 한국어와 한국 풍습을 배울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를 다니는 그녀의 딸 2명은 과거 어머니가 고국에서 한국어를 배웠듯 이 곳에서 베트남어 배우기에 한창이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한국어만 쓰라고 했던 시부모도 요즘은 "외국어 잘하면 대입이든 취업이든 도움이 된다"며 베트남어를 가르쳐 주라고 성화란다.

중학생이 되면 방학 때 친척들이 많이 사는 호치민시로 '어학연수'도 보낼 계획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라면 '서울대 법대' 나온 수재보단 딸 같은 사람을 쓰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티하이엔 씨는 KBS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서 인기를 끈 베트남 여대생 '원 시 투 흐엉' 씨와는 베트남 TV의 특집 방송에 함께 출연하면서 알게 돼 연락도 하는 사이.

흐엉 씨처럼 "좀 더 다양한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알려져 가난을 못 이겨 외국에 시집왔다는 식의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인터뷰를 끝맺으며 앞으로의 꿈을 묻자 아이들을 베트남어와 한국어 두 나라 말을 모두 잘하는 '반듯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문화 가정이 겪는 편견이 그때가 되면 모두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그녀, 당당하고 힘찼다.

t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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