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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받침 너무 어려워요" 무지개학당 이주여성들의 한글배우기

박옥화 0 1,409 2007.11.27 11:25


 
"한국어 받침 너무 어려워요"
무지개학당 이주여성들의 한글배우기 
 
  박창우 (saintpcw)  
 
 
 

“오파, 어빠, 오빠.”

 

서툴렀다. 발음은 정확치 않고 글씨는 비뚤거렸다.

 

“나동생, 남동샌, 남동생.”
“내면, 낸면, 냉면.”

 

받침이 있는 단어는 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의 발음에 따라 몇 번씩 읊고 난 다음에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란 없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국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이주여성들은 오늘도 낯선 타국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펜을 잡는다.

 

전주 동산성당내의 한 작은 컨테이너 박스. 2평 남짓한 공간은 책상과 의자만으로 꽉 찼다. 이곳에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이주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무지개학당'이 열린다.

 

“최근 들어 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잖아요. 곳곳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이나 교육이 이뤄지는데 동산동 쪽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더라고요. 올해 초에 성당에 계시는 신부님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쪽에서 이런 교육을 해보자고 해서 같이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이주여성들 무지개학당에 모인다

 

2년 전 장수의 민들레아카데미에서 이주여성들을 상대로 한글 수업을 했던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김미연(28)씨는 지난 4월부터 무지개학당에서 선생님을 맡고 있다. 미연씨를 중심으로 2명의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함께 이주여성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무지개학당을 찾는 이주여성은 15명 안팎. 그중 7~8명은 꾸준히 참가한단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4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수업은 그룹을 나눠 진행된다. 중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 이주여성들의 국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연씨는 필리핀에서 온 엔젤 마리퀴트(Angel Mariquit)(23)씨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목걸이를 입어요~”
“아니에요. wear가 ‘입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목걸이는 목에 거는 거니까 ‘목걸이를 걸다'라고 해야 돼요.”
“목걸이를 걸어요?”
“네, 잘했어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엔젤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몰라 대화하는데 너무 어려움이 많았어요.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잘 못 알아들어 곤란함을 겪기도 했죠.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다 친절한 것 같아요. 여기 선생님들도 다들 친구처럼 좋아요.”

 

엔젤씨는 작년 1월 결혼을 통해 한국에 왔다. 작년 4월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기본적인 대화는 나눌 정도로 한국어를 구사한다. 

“한국말을 더 배우면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돈을 벌게 되면 공부도 하고 싶고요. 어릴 적부터 배우고 싶었던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이 꿈입니다.”

 

수업이 시작되고 10여 분이 흘렀을까. 한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도착했다.

 

“어머,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머리 묶었네요?”
“선생님 바빠요? 왜 지난 주 안 왔어요?”

 

이들은 마치 친 자매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주 여성들은 마음의 걱정과 고민을 해결한다.

 

한 중국 이주 여성이 한국에 대한 실망감을 선생님께 털어놨다.

 

한국 친구에게 실망하기도

 

“전, 한국에 와서 두 명의 친구 사귀었는데 마음의 상처 받았어요. 집에 놀러 와서 냉장고랑 장롱이랑 막 열고 다니는 것이에요. 개인의 사생활 존중해줘야 되는데 그런 것이 없어요. 또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전 분명 하나만 샀는데 영수증을 보니 두 개가 찍혀있는 것이에요. 너무 실망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어요.”

 

“아~ 그랬어요? 근데, 어딜 가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있잖아요. 00씨가 운이 없어 나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럴 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요. 알았죠?”

 

“알아요. 한국에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 알아요. 제가 아파서 병원 갔을 때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정말 따뜻하게 대해 줬어요. 여기 계시는 선생님들도 착하고요. 선생님들 만나면서 다시 마음의 문 열게 됐어요.”

 

그녀는 작년 5월 아는 사람의 소개로 결혼을 해 한국에 왔단다.

 

“남편 형수 되시는 분이 중국에서 장사를 하시는데, 그분 소개로 남편을 만났어요. 한국에는 작년에 왔죠. 한국 사람들이 중국 사람보다 교양이 많다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한국 사람들은 외국 사람이 한국에 시집와서 사는 것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요. 집에서 CD로도 공부하고 여기 와서도 공부하고요. 근데 받침 있는 단어들은 너무 어려워요.”

 

이주 여성들은 한글 수업을 받는데 있어 무엇이 가장 어렵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받침”이라고 얘기한다. 특히 일본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한글의 받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책이 있습니다[채기 이씀니다]”
“이것은 책입니다[이거슨 채김니다]”

 

작년 3월 한국에 온 야마구치 가쯔미(40)씨는 한국어 발음이 제일 어렵다며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한글 너무 어려워요. 발음 어려워요. 특히 받침이 뒤로 넘어가서 발음되는 것은 일본말에 없는 경우라서 제일 힘들어요. 앞으로 한국에 살면서 일본어 선생님을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한국어 더 잘해야 해요. 열심히 배울 것입니다.”

 

앞으로는 다문화주의 인정해야

 

이주여성들은 발음이 틀려도, 표기가 틀려도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한글을 배워나갔다. 함께 웃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한글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 그리고 타인과 융화하는 방법까지 배워 나가고 있었다.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각종 정책이나 프로그램은 단순하게 그들을 한국사회로 동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져서는 안돼요. 지금이야 초기단계라서 그들을 동화시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그들 모두를 인정해주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다문화주의를 인정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주여성에 대한 지원정책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글 수업이 진행되는 이 작은 컨테이너 박스의 이름이 무지개 학당이라고. 7가지 색이 무지개라는 이름아래 속해있는 것처럼. 피부색이 조금 다르더라도, 말투가 조금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무지개학당의 작은 컨테이너는 따뜻했지만, 늦가을 날씨 탓인지 밖은 여전히 쌀쌀하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2007.11.26 10:14 ⓒ 2007 OhmyNews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75080&PAGE_C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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