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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옆에 식칼 뒀다 남편이랑 대판 싸웠어요 베트남선 악귀 물리치는 부적이거든요

박옥화 0 1,796 2007.10.25 09:56
[베트남 신부 딘티냔의 전원일기(3)]
 
 “아기 옆에 식칼 뒀다 남편이랑 대판 싸웠어요 베트남선 악귀 물리치는 부적이거든요”
출산 후 시어머니가 끓여준 미역국 실컷 먹어
베트남서도 젖 잘 나오라고 돼지 족발 삶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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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우리 아기 머리맡에는 식칼이 하나 있어요. 제가 갖다 놓은 것이에요. 남편은 무시무시하다고 아기 머리맡에 놓지 말라고 해요. 그래서 몇 번 심하게 다투기도 했어요. 칼을 두면 아기에게 나쁜 기운이 스며들지 않아요. 아기가 병에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자라요.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항상 칼을 곁에 뒀어요. 남편이 계속 칼을 치우라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칼이 없으면 더 무서워요. 칼은 우리 아기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에요. 남편이 잘 이해를 못 해줘서 아쉬워요. 남편은 교회에 다녀서 부적 같은 것이라고 더 싫어하는 것 같아요.


지난 3월에 우리 아기 사랑이를 낳았어요. 이제 두 달 조금 넘었어요. 남편은 회사에 가고 저 혼자 집에 있었을 때예요. 점심이나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배가 너무 아팠어요.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많이 아프다고 하자 바로 달려왔어요.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이 진통이 2분 간격이냐고 물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니까 남편은 이제 곧 아기가 나오려는 것 같다고 했어요. 남편은 제가 임신한 기간 중에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출산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었어요. 남편은 신호등도 안 지키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어요.


한국 병원은 서비스가 참 좋아요. 의사, 간호사도 많고요. 베트남 병원에서는 그런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어요. 한국 병원은 깨끗하고 밥도 병실까지 가져다 줘요. 베트남 병원에서는 구내식당에 가서 직접 먹거나 밖에 나가서 사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병원비 나온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병원에서 이틀 밤을 잤는데 23만원이나 나왔어요.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요. 베트남에서도 아이는 대부분 병원에서 낳아요. 그래도 병원비는 베트남 돈으로 20만동, 한국 돈으로 1만5000원 정도예요. 한국에선 산후조리도 하루에 10만원이나 해요. 저는 산후조리는 필요없다고 했어요. 시어머니가 한 달 정도 저를 돌봐주셨어요.


황금돼지해라고 우리 딸 사랑이가 태어나자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어요. 시댁에서는 30년 만에 태어난 아이래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베트남에서는 딸보다 아들을 더 좋아했어요. 10년 전만 해도 아들을 못 낳으면 여자가 이혼당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시골에서는 딸을 낳으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아이를 낳으라고 해서 딸이 7~8명 되는 경우도 흔해요. 아들을 낳지 못하면 무척 미움을 받았어요. 요즘은 아들이고 딸이고 다들 축하해 주지만요.


아기를 낳고 베트남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는 아기한테 모유를 먹여야 하니까 밥을 많이 먹으라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산모한테 미역국을 주는 것 같아요. 베트남에서는 미역국을 안 먹어요. 저는 한국 와서 처음 먹어봤어요. 미역국이 피를 맑게 하고 혈액 순환에도 좋대요. 베트남에서는 돼지 족발이랑 돼지 허벅지를 삶아 줘요. 돼지 족발이 수유에도 좋다고 해요. 돼지 족발, 돼지 허벅지는 모유를 더 풍성하게 한대요. 베트남에서는 태어난 아이에게 모두 모유를 먹여요. 베트남에서는 아이를 낳고 일주일 후면 다시 밭에 나가 일을 해요. 제가 살던 동네에는 산후조리라는 것 자체가 없었어요.


베트남 고향집에는 컴퓨터가 없어요. 엄마랑 전화로 시간 약속을 하면 엄마가 게임방에서 접속해요. 웹캠으로 사랑이를 찍어서 엄마한테 보여줬더니 엄마가 너무 예뻐하세요. 직접 보고 싶다고 해요.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는 우리 남편보다 세 살이 많아요. 마흔세 살이세요. 부산에 있는 고향 친구가 베트남에 간다고 하기에 아기 사진이랑 선물을 친구편에 보냈어요. 친구들이 우리 아기 사진을 보더니 아기가 귀엽고 엄청 크다고 해요. 두 달 된 우리 아기가 넉 달 된 친구 아기만큼 커요. 우리 아기는 나중에 키가 많이 자랄 것 같아요. 우리 딸 사랑이가 예쁘게 컸으면 좋겠어요.


좀 있으면 우리 아기 백일이래요. 베트남에서는 백일 잔치는 하지 않아요. ‘토이 노이(thoi noi)’라고 돌잔치는 하지요. 옛날에는 돌잔치 때 아이 앞에 활, 화살이랑 연필, 돈을 놓고 무엇을 잡나 보기도 했대요. 요즘은 그런 건 거의 없어졌고 그냥 아이 앞에 케이크를 갖다 놓고 사진을 찍어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책이랑 공책도 사주고요. 사실 아이가 자랄 생각을 하면 걱정이 되기도 해요. 엄마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하진 않을까 하고요. 제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아이가 자라면서 한국말을 제대로 못 배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어요. 그래도 우리 사랑이가 커서 한국말이랑 베트남말을 둘 다 잘했으면 좋겠어요. 가끔 베트남에 가게 되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만나서 베트남말로 얘기하면서 같이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베트남에 있는 엄마가 더 보고 싶어요. 엄마도 내가 어릴 때 제 머리맡에 칼을 두고 제가 건강히 자라길 기도하셨을 거예요. 우리 엄마,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무척 보고 싶어요. ▒



/ 딘티냔 | 1988년 베트남 하이퐁에서 태어나 자랐다. 2006년 열아홉 살에 남편 김보성씨를 만나 결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살고 있다.
정리 = 김경수 기자 kimks@chosun.com

 

 

 

출처 :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7/20070517006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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