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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은 달라도 아줌마는 다 똑같아!

박옥화 0 1,665 2007.10.15 10:00

[화제] '한국 추석 완전정복'나선 이주여성 아줌마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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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식 전통인사법을 선생님에게 가르쳐 주는 뮬리타씨.
ⓒ 김대호
내일모레가 추석이라 강옥희(49) 교장선생님과 이번 주 한글 수업을 쉬고 추석맞이 행사를 하기로 했다. 떡살을 찍어다 송편도 만들어보고 한복도 멋들어지게 입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명절 때 부를 우리 민요도 한 곡쯤은 배워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다과상을 내 대접하는 방법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와 월선리예술인촌에 같이 사시는 윤숙정 선생님을 괴롭혀 보기로 했다. 윤 선생님은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다도와 전통예절을 강의하시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나를 예뻐하시는 분이라 차마 거절하지는 않을 테지 하고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는데 완전히 수지맞았다. '떡'까지 해오시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범 여섯 분을 대동하고 오셔서 폼 나는 된 교육을 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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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도와 함께 손님접대하는 법을 배우는 이주여성 아줌마들.
ⓒ 김대호
사범들이 대부분 친정엄마 나이인 50대인지라 교육 시작과 함께 재잘재잘 응석 섞인 이야기도 새어 나오고 수다쟁이 아줌마들은 선생님들 배꼽을 쥐게 한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가보지도 못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같은 해에 아버지를 여읜 한 사범님이 손을 꼭 잡아주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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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절하는 법을 일일히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 김대호
대부분 결혼식 때 마련한 한복을 가지고 있었는데 입는 방법을 몰라 장롱 속에 묵혀 있다고 했다. 어떤 분은 하도 안 입어서 서생원이 구멍을 냈다고 울상이다. 부족한 한복은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 옷까지 동원됐다.

탈의실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최영선 상담선생님이 '김 선생님만 나가시면 여기가 탈의실이네' 하니 모두 '와' 하고 웃는다. 학교에서 유일한 남자인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사무실로 쫓겨난다.

윤숙정 선생님은 한복 입은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자꾸 한국 출신 주부들로 착각하셨는지 '한복 입고 힐 신으면 팔푼이가 돼요' 등등 이주여성들이 알아들을 수없는 농담을 했다가 썰렁한 분위기에 무안해 하신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으신지 연신 싱글벙글이시다.

옷고름을 매는 방법부터 시작했는데 아마도 이것이 오늘 수업 중에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나도 한복을 즐겨 입지만 모두 개량한복인지라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TV에서 보면 큰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찍은 외국인들을 보고 웃곤 했는데 한 사람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친정엄마 뻘 사범들에 재잘재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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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에 참석한 전체 이주여성들이 큰절하는 모습.
ⓒ 김대호
뮬리타(필리핀 출신·35)씨는 "한국예절과 호칭, 촌수 같은 것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지만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니 오히려 재미있다"며 "필리핀은 노인들은 옛 풍습을 지키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한국 사람들은 예절을 잘 지키고 사는 것 같다"고 칭찬을 해준다.

이번에는 선생님들이 뮬리타씨에게 상대의 이마에 손등을 얹는 필리핀식 인사도 배웠고 2주차 새댁 쟌박(태국 출신·21)씨에게는 불교의 합장과 같은 태국 인사법도 배웠다. 엔지니어인 한국인 남편과 현지에서 사랑에 빠져 가나에서 한국까지 시집온 나나(39)씨에게 그 나라의 인사법과 예절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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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로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강의에 열중하는 이주여성들.
ⓒ 김대호
피부색은 달라도 아줌마는 똑같다. 이렇게 인사법을 배우고 있지만 다음 수업 때 교실에 들어올 때 틀림없이 몸부터 배배 꼴 것이다. 거리나 시장에서 만나거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쩔 줄 몰라 한다. 하기야 졸업한 지 십수 년이 지난 나도 여전히 은사님들을 만나면 어렵고 당황스럽다. 사실 내가 가당치 않게 선생님 대접을 받는 것에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이 한두 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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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한복 입은 모습이 신기하기만 한 아가.
ⓒ 김대호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모이면 한국 아줌마들처럼 여지없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국적이 다른 사람끼리 수다를 떨 때는 한국말로 하니까 금방 알아채지만 모국어를 사용하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필리핀 아줌마들도 수다를 떨 때는 절대로 영어를 쓰지 않는다. 내 흉을 봐도 모를 일이지만 일주일에 두 번 이분들의 외출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송편 만드는 시간은 완전히 선생님들이 창피(?)를 당했다. 그래도 '떡' 하면 우리라는 생각과 달리 '쌀가루'를 보자마자 능수능란하게 반죽을 하기 시작해서 마치 기계로 찍어 낸 듯이 송편을 빚기 시작하는데 입을 떡 벌리고 쳐다 볼 뿐이었다. 강옥희 교장선생님도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송편 빚기에 나선다. 마치 친정엄마가 시집갈 딸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기에 오지고 정겹다.

'아! 만두를 만드는 솜씨들이 있었구나?' 하는 내 말에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그 많던 쌀가루는 20분도 안돼서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다. 솔잎 얹어 쪄내서 먹기도 하고 일일이 봉지에 담아 가족들과 함께 미리 추석 맛보라는 안부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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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서 시집온 지 2주째인 21살 막내 새댁 잔박.
ⓒ 김대호
점심시간에는 우리 딸아이 친구인 은별이 엄마 마리빅(반장·필리핀 출신·35)씨가 필리핀 음식을 가져와서 맛보라고 식판에 얹어주신다. 둥근 가지와 여자열매를 삶아 소스를 얹은 것인데 담백하고 부드러워 맛깔스럽다. 특히 풋 여자열매의 쓴 맛이 여운으로 남아 입맛을 돋운다. 다 먹고 한 번 더 덜어 먹었다.

다도 시간에는 한 학생이 '선생님, 차도 소주처럼 어른 앞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마셔야 돼요?' 선생님들은 웃는데 학생들은 진지하다. 우리와 다르게 이들에게 너무나 궁금한 일이었던 것이다. 진즉에 이들에게 재교육의 공간이 제공되었다면 한국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터인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추석 완전정복 프로젝트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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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엄마처럼 옷고름 매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 김대호
무안이주여성학교 학생들은 모두 45명이다. 새댁들이 10여명의 아이들을 업고 오니까 항상 50~60명이 수업을 받는 셈이다. 필리핀 출신이 70~80%를 차지하고 태국, 중국 순인데 가나출신 나나씨와 조만간 합류할 것으로 보이는 일본 주부들까지 합치면 5개국 70명에 육박할 것 같다. 이제 추수철이 다가오니까 농촌지역 특성상 당분간 출석률은 줄 것 같다.

목포, 영암, 함평 쪽에서 애까지 업고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무안까지 오시는 분들을 보면 고마우면서도 괜스레 미안해진다. 이분들도 우리 국민들이고 똑같이 세금도 내고 동시에 유권자이기도 한데 최소한의 재교육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TV에서 이주여성 인권문제를 언급할 때는 그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았는데 그보다 시급한 것은 '재교육프로그램'인 것 같다. 그리고 이주여성 자녀들 문제도 그렇다. 우리 딸아이 반만 해도 12명 중 3명이 이주여성 자녀들인데 이주여성 엄마에게 말을 배우다 보니 말이 느리고 피부색과 모습이 달라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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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들의 큰절하기 시범.
ⓒ 김대호
우리의 '추석 완전정복 프로젝트'는 부족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교장선생님은 이번 추석행사로 한층 용기를 얻으신 것 같다.

수업이 있는 날마다 와서 자원봉사를 해주시는 아주머니, 깊은 시골도 마지않고 일일이 태우러 다니시는 기사아저씨, 거기다 노트며 학용품을 보내주시기로 하신 분도 계시다. 가난하지만 우리처럼 마음부자, 사람부자인 학교는 없는 것 같다.

반장인 마리빅씨는 "주부들에게 명절은 괴로운 일이라고 하는데 이주여성들에겐 공포스러운 일이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예절과 호칭, 높임말 같은 것들이 어려웠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특히 아이들과 같이 부를 수 있는 동요와 자장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부디 이주여성들의 2005년 추석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달같이 풍성하고 기쁨으로 넘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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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절. 이제 제법 폼이 잡혔다.
ⓒ 김대호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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