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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이주여성 "다문화 행사 괴로워"

박옥화 0 2,356 2008.09.17 13:08

이주여성 "다문화 행사 괴로워"
지자체 일회성·이벤트 프로그램 대부분
귀하신 몸 모시기 비상… 일부선 일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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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베트남 여성 민투엉(26·가명)씨는 지난 추석 대목에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지난 9일께 민투엉씨는 A구에서 실시하는 '송편빚기 행사'에 참가했다. 송편을 빚기보다는 사진 포즈만 잡다가 돌아왔다. 며칠 뒤 민투엉씨는 B구에서 마련한 '한복입기 체험 행사'에 참가해 역시 사진만 찍었다.

경남 김해에 사는 필리핀 이주여성 지나(31·가명)씨도 얼마 전 한 민간기업에서 실시한 '외국인 노동자' 행사에 참가했다. 사람이 모자라 와 달라는 동사무소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나씨는 10월 초에 있는 '다문화가정 결연식'에도 참석해야 한다.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가운데 부산·경남지역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다문화 교육이나 행사에 이주여성들이 동원되거나 겹치기로 참가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해 본래의 취지를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7일 부산시와 경남도에 따르면 부산지역에 거주하는 이주여성은 6천500여명, 경남지역은 5천900여명(2007년 12월 현재)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전체 결혼 가정 10가구 중 1가구가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이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면서 해당 지자체에서 이주여성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위해 한글교실이나 음식·문화 체험, 컴퓨터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별도의 예산 없이 대부분 '여성 관련 사업·행사비'에서 일부를 떼내 다문화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천편일률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처럼 프로그램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보니 이주여성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상당수 지자체들도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과 질보다는 참가자를 늘리거나 유지하는 데 안간힘을 쏟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 일부 지자체나 민간업체들은 이주여성들에게 교통비와 식비 명목으로 3만~5만원의 일당을 주기도 한다.

지난 2004년에 부산 남구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 아릿타(25·가명)씨도 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일부 구청이나 복지관 행사에 참석하면 간혹 수고했다고 돈을 준다"며 "처음엔 안 받으려 하다 요즘은 주는 대로 받는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이 '귀하신 몸'이 되다 보니 이들을 모집하는 속칭 '브로커' 격인 이주여성도 등장했다. 지난 1998년 부산으로 시집 온 필리핀 이주여성 캐롤린(46·가명)씨는 다문화 행사가 몰리는 달이면 바빠진다.

이주여성들 사이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그에게 지자체나 민간업체에서 '이주여성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 '10~20여명 정도는 언제든지 모을 수 있다'는 캐롤린씨는 "솔직히 피곤하고 힘들지만 혹시나 도와주지 않으면 잘못 될까 싶어 마지못해 돕는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일부 지자체 등에서 이주여성들을 동원하는 것은 참가인원을 위주로 하는 실적평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한 구청 관계자는 "예산은 없고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은 실시해야 하다 보니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가 많다"며 "행사 내용보다는 참가한 이주여성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미흡한 점이 많다"며 "지자체에서 다문화 관련 사업 등이 정착되면 본격적인 관리 감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부산이주여성다문화가족센터 이인경 소장은 "일부 지자체와 복지관의 다문화 프로그램들이 이주여성을 주체가 아닌 액세서리로 보는 관점에서 전시·생색 행정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며 "실제 그런 프로그램들이 이주여성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대식 기자 pro@busanilbo.com 
 / 입력시간: 2008. 09.17. 10:37
 
출처 : 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8/0917/030020080917.10061037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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