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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신문]안성댁으로 살아가는 응엔응옥옘과 웡티안

박옥화 0 2,380 2008.12.15 11:36
“한국말도 잘하고 일도 하고 싶어요”
안성댁으로 살아가는 응엔응옥옘과 웡티안
신승희 시민기자 icon_mail.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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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시집와 안성댁으로 살아가는 응엔응옥옘(가운데)과 월티안(오른쪽). 그들은 한국말도 잘하고 일도 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 안성신문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말하며 사는 삶이 주는 편안함을 마다하고 새로운 삶과 사랑을 찾아 낯선 대한민국 안성시로 날아온 용기 있는 두 여성을 만났다. 응엔응옥옘과 웡티안.

발음하기조차 힘든 이름을 가진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이다. 다행히 친구들끼리는 옘과 안이라고 부른다기에 기자도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마침 옘의 친정어머니가 와 계셔서 자리를 같이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여자 넷이 모여 수다를 떨며 서로 사는 얘기를 나눠봤다. 비록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자랐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유쾌한 시간이었다.

옘은 시집온 지 삼사 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 한국말이 많이 서툴다. 아무래도 옆에서 살뜰히 보살펴주는 시어머니가 안 계셔서 우리말 배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아기가 어려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남편은 출근해서 저녁 늦게야 돌아오니 시아버지 혼자 며느리 앉혀놓고 말 가르치기가 좀처럼 버겁겠는가. 그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어 회사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많이 나아졌다 한다. 옘은 이곳에서의 회사생활 재미가 꽤나 괜찮았나보다. 지금은 불황이라 잠시 집에서 쉬고 있지만 다시 회사에 나가길 간절히 바랬다.

안은 언니가 둘 있어 막내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 웃음도 많고 아이한테도 따뜻하다. 성격도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안성종합사회복지관을 다니며 한국말도 배우고 요리도 배웠다. 지금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어 거의 첫째아이와 집에 있는 날이 많다. 

결혼하기 전 베트남에선 무슨 일을 했나요?

옘 : 새우회사에 다녔어요. 새우를 나누고 포장하는 회사죠. 한 달 꼬박 일해서 한국 돈으로 15만 원 정도 받아요. 그런데 한국에선 한 달 일하면 150만 원 정도를 벌지요.

안 : 과일나무 농사를 지었어요. 한국에는 그 과일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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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옘의 친정어머니가 딸의 직장생활 때문에 아이를 돌봐주러 한국에 왔다. 인터뷰 자리에 옘의 어머니도 함께했다.       ©안성신문
결혼하니 어떤가요? 남편에 대해 얘기 좀 해주세요.

옘 : 착해요. 요리도 잘하고 찌개 특히, 김치찌개는 오빠가 더 잘해요. 저는 청소담당입니다. 우리집은 시아버님, 남편, 시누이와 조카 둘 그리고 우리 아기가 함께 살아요. 가족이 많죠. 그게 좋아요. 시누이도 잘해주고요. 제가 회사 다닐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친정어머니가 와 계세요.  
안 :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딸아이가 있어요. 시어머니도 잘 해주시고, 남편은 잘생기고 착해요. 청소도 해주고, 애기랑 놀아주기도 하고, 목욕도 시켜줘요. 설거지도 가끔 해주지요. 복지관에 다니며 요리도 배웠어요. 지금은 볶음 같은 거 잘할 수 있어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녀들이 한국 남자들을 택하게 된 이유는 베트남 남자들이 술을 많이 먹고 또 일도 잘 안하고 게으르기 때문이었단다. 그에 비해 한국남자들은 술도 적게 먹고 여자에게 잘 해주고 성실하다는 것. 아마도 그녀의 남편들이 좋은 한국 남자상을 만들고 있나보다.

시집을 와서 어려웠던 점을 묻자 둘 다 음식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너무 맛이 없고 못 먹겠더란다. 지금도 그냥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 있다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거의 1년 동안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았다고. 안은 지금도 된장국을 잘 못 먹겠다고 한다. 해서 된장 예찬론자인 기자는 된장의 우수성을 이야기해주며 아이들과 꼭 먹으라 당부를 남겼다.

맛있는 음식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옘은 갈비탕을 안은 갈비찜을 골랐다. 갈비는 역시 세계적인 우리의 음식이다. 옘은 또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깍두기와 배추김치 모두 맛있단다. 그러는 와중에 곁에 계시던 옘의 어머니는 칼국수를 뽑았다. 칼국수 얘기가 나오니 베트남 쌀국수 얘기로 그녀들이 신났다. 

그녀들이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까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한국말을 몰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어 겪는 고충이었다. 옘은 한국생활 초기에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의사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서로 난감할 수밖에. 그래서 베트남에서 먼저 시집와 한국말에 익숙한 동네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아픈 상태를 이야기하고 진료를 받았다고. 잠깐 들른 그녀의 집에서 시아버지께서 “그때 아주 고생이 많았다”며 들려준 얘기다. 

안은 처음에 시집을 와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통 알아들을 수 없어 잠자코 있다가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단다. 처음 시집온 새댁이 많은 시집식구들에 둘러싸여 얼마나 진땀을 뺐을까? 더구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말이다.

옘이 살고 있는 죽산면 장계리에는 베트남 친구들이 없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고 그나마 다들 일을 나가 통 만날 수가 없단다. 할머니들밖에 없어서 심심하겠다 했더니, 그래도 할머니들이 잘 해준다며 “할머니들이 좋아요” 한다.

안 역시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대부분 낮에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기가 힘들다고. 그래도 이웃주민들이 잘 챙겨주는 편이라며 고마움을 전한다.

3개월에 한번 정도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끼리 모임이 있단다. 식당에서 만나 같이 밥 먹고 고기 먹고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유로운 수다란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표현을 잘 하지 못해 줄여줄여 말하던 것을 맘놓고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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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그의 딸.     © 안성신문
예전에 어렸을 땐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물었다. 안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대답을 한다. 옘은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고 수줍은 듯이 웃고만 있다가 그냥 회사원이란다. 그때 옆에 계시던 옘의 어머니께서 옘이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며 뭐 해달라 투정 부리지도 않고 공부도 잘했는데 엄마 아빠가 돈이 없어서 뒷바라지를 못해줬단다. 그제서야 옘이 입을 떼며 돈 많이 벌어 화장품이나 옷가게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든든한 장녀 노릇하며 힘겨웠을 그녀. 모녀의 눈이 촉촉해진다.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옘의 아들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고 안의 딸은 아직 어려 엄마와 함께 집에 있다. 

옘 : 아들이 노래를 좋아해요. <곰 세 마리>도 부르고 <어머나>도 부르고 너무 잘 불러요.

안 : 딸이 언니들하고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작은집에서 자주 놀러오는데 사촌언니들한테 언니 언니, 하며 무척 잘 따라요.

아이 키우는 얘길 하다가 문득 옘이 ‘어부바’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베트남에는 어부바가 없단다. 즉 아이를 안거나 업어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안아주고 업어주는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한데 왜 그러냐?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  물으니, 베트남이 너무 더워서란다.

베트남에서는 ‘얌’이라 부르는 그물 침대에 눕혀 아이를 흔들어준단다. 날씨가 더우니 아이들도 업히거나 안기는 것보다 그걸 더 좋아한다나? 그래서 옘은 아들을 자신이 자란대로 얌에 뉘어 흔들어주려고 했으나 시아버님께서 아이 머리 나빠진다고 해서 조금만 흔들어주었단다(^^). 옘은 한국의 어부바 육아법이 무척 신기하게 생각된다고 했다. 마침 안의 집에 얌이 있어 구경할 수 있었는데, 작은 크기의 그물침대였다. 영화에서나 보는 야자수 사이에 매단 그물침대마냥 생긴. 안은 얌이 있긴 하지만 아이가 업어주는 것을 더 좋아해서 자주 업어준단다. 아마 우리 아이한테 갖다주면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겠다 싶다.

아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옘 : 공부 잘해서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안 : 공부 잘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요. 의사, 선생님, 이렇게 바라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거 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소망이 있다면?

안 : 애기를 잘 키우고 한국말도 잘하고 싶어요. 참, 요리도 잘하고 싶어요. 애기와 신랑 맛있는 거 만들어주게요. 시어머니께 너무 고마워요. 반찬을 못해도 한국말을 잘 못해도 잘 대해주세요. 너무 고맙습니다.

옘 : 회사원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옘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보면서 얼마나 열정 있는 사람인지 적극적인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안은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으로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들이 품고 있는 열정과 꿈과 사랑이 그녀들이 뿌리내린 이곳에서 잘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신승희 시민기자




 
2008/12/12 [11:59] ⓒ 안성신문
출처 : http://www.as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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