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만 배우면 한국사람 되나요?
소유리기자
이주여성 공동체 만들도록 정책지원 바람직
올해 5월 기준으로 전국에 결혼이주여성이 12만6천900여 명이 살고 있다. 인천에 사는 결혼이주여성들도 6천 명을 훌쩍 넘었다. 서울에 3만5천여 명, 경기도에 3만1천여 명으로 서울·인청·경기에만 60%에 가가운 이주여성들이 살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38곳이 문을 열었고 내년에 8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인천시도 지난해 10월부터 남구 여성복지관과 강화도 두 곳에서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시 결혼이주여성 정책=지원센터는 전국 공통 사업으로 한국어 교육 사업과 가족통합 프로그램, 결혼이주 여성들을 상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 특화 사업으로 내년부터 비즈니스 한국어 수업을 할 계획이다. 오는 2009년 도시엑스포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통역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주 여성들에게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지원센터에서 하는 한국어 강의는 이주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지난해 1개로 시작해 지금은 6개 반이 운영 중이다. 취학 아동을 둔 부모들을 위한 초등학교 교과서 강의도 마련했다. 배우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 지원센터에는 매달 20명 이상이 신규 등록을 한다. 내년에는 한국어 강사를 4명 더 모집할 계획이다.
가족 통합 프로그램은 자녀이해 프로그램과 부부이해 프로그램, 가족 캠프 등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가족 모임은 한 해 두 번, 부부 모임은 네 번, 가족 캠프는 한 차례 이뤄진다.
내년에는 방문 서비스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국·시비 3억400여 만원을 들여 한국어 방문 교육과 가족 상담 등을 하게 된다. 또 아동양육 운영지원 예산도 큰 폭으로 늘어난다. 올해 7천600만원에 그쳤지만 내년에 국·시비로 6억원을 지원한다. 현재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아이 돌보미와 가정 도우미는 10명. 올해 90개 가정이 일주일에 세 차례 도우미의 도움을 받았지만 내년에는 사업 신청자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지원센터 말고도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인천여성문화회관과 인천국제교류센터, 초등학교 등이 있다.
여성문화회관은 각종 서비스도 제공한다. 한국어 교실 3개을 운영 중이다. 또 올해 산모도우미 사업과 연 3회 문화공연관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국어 강의는 한 반 정원이 25명으로 대기자만 두 세배를 넘는다. 올해 산모도우미 도움을 받은 이주여성은 4명이다.
김성영 여성문화회관 간사는 "아무래도 언어가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특히 지원센터나 문화회관은 이주 여성들의 신뢰도가 높은 곳이라 배우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 지원 정책 역시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적은 예산에 허덕인다.
남구에 있는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상근 근무자는 간사 한 명 뿐이다. 상담인력을 따로 배치하기 어렵고 다른 사업을 진행하려면 여성복지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강화도 지원센터에는 3명이 일하고 있다. 이곳은 단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교육 장소를 구하는 데 더 어렵다.
여성문화회관 역시 내년에 한국어 교실을 2개로 줄여야 한다. 올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연간 1천500여 만원을 지원받았지만 내년엔 이 예산을 다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모도우미 사업과 문화공연관람은 아에 폐지했다.
한국어 교육이나 음식 만들기, 한국 문화 배우기 등을 빼면 참여율이 그리 높지 않다. 특히 가족 캠프나 부부 프로그램 등은 참가자가 겨우 1%를 넘는다. 지원센터에서 지난해 진행했던 가족 통합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79명뿐이었다. 다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온 지 6개월 됐다는 원지혜(27)씨는 "한국사람들 인식이 여자들은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 있는 친구들도 많다"며 "아이가 태어나면 집안일 하기도 바쁜데 느긋하게 교육받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동희 인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간사는 "한국어 교육은 다른 강의에 비해 찾는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전체 결혼이주여성 6천여 명 중 한국어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10% 안팎이다"며 "한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가족 프로그램은 가족이 이해해주거나 도와주지 못하면 참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또 "한국 여성들도 결혼하고 나면 시댁 눈치보느라, 혹은 생활에 치이다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는 것 처럼 이주여성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이주여성들에게 가족과 통합은 가장 시급한 문제라 가족 프로그램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덧붙였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라=이주여성 정책은 두 가지 축이 있다. 통합과 분리다. 우리 사회로 이들을 통합시키는 작업과 이들 스스로 자신들을 한국 사회와 분리하려는 몸짓을 보낸다.
홍미희 인천발전연구원 인천여성정책센터장은 "법적 권리는 한국 사람과 차별받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문화와 정서의 다름을 인정해달라고 말한다"며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이들에게 또 다른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또 "이들이 갖고 있는 정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섞일 수 있도록 해야지 한국 사람이 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천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정책은 한국 사람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대부분이다. 언어를 가르쳐주는 데 그친다. 장기적인 계획이나 목표는 없다. 결혼이주여성 담당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한국 음식 만들기, 한국어 가르쳐주기가 정책의 대부분을 이룬다. 한국 음식 맛을 모르는 데 음식을 만들라고 하고, 한국에 왔으니 명절에는 이렇게 하라고 일방적으로 알려주고만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5년 됐다는 호시 히로미(34)씨는 "30년을 명절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즐기기만 했는데 한국에 와서 명절에 쉴틈없이 일하는 여자들을 보고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다"며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한국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여자들도 시집가면 마찬가지라고들 하지만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지혜 씨는 한 달에 한 번 인천에 사는 친구들과 모여서 베트남 음식도 먹고 베트남 문화가 있는 곳을 찾는다. 원 씨는 "친구들과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나누고 나면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며 "한국에서보다 베트남에서 오래살았기 때문에 한국사람으로 살고 싶으면서도 우리만의 문화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말했다.
이들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결혼이주여성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하나의 가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 센터장은 "이주여성들이 모여서 동아리를 만들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정책적으로 돕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동체가 생기면 밖으로 나오기 어려워 하는 이주여성들을 이주여성이 돕는 기회도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이주여성 정책은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그저 인기에 영합해서 결혼이주여성 대책을 쏟아낸다면 이들이 양적으로 팽창했을 때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소유리기자 blog.itimes.co.kr/rainworm
종이신문정보 : 20071225일자 1판 12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7-12-24 오후 9:13:43
출처 : http://news.itimes.co.kr/Default.aspx?id=view&classCode=301&seq=307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