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미 다(多)민족 국가…”
[5개 핵심 문장에 응축한 올해의 한국]
“한국은 다인종 국가로 가고있다”
안와르 케말 유엔 인종 차별 철폐委 한국조사관 인터뷰
“혈통 따지는 시대는 지나… ‘혼혈’ 표현 삼가야
브라질·미국은 다인종이지만 국가의식 강해”
“인종 차별 금지법 제정 서둘러야”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현대 한국 사회의 다(多)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가 지난 8월 17일 권고했다. 위원회는 “한국이 ‘단일 민족 국가’라는 것은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도, 국익에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자문단은 이 권고안이 “앞으로 오랫동안 되풀이해서 논의될 중요한 뉴스”라고 평가했다. 한국 사회의 성격 변화를 드러낸 중대한 분기점이라는 것이다.
이번 권고안에서 한국 담당 조사관을 맡은 안와르 케말(Anwar Kemal·64) 유엔 CERD 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순혈(純血)이니 혼혈(混血)이니 하는 표현부터 삼가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전화와 이메일로 진행됐다.
―권고안에서 위원회는 구체적인 법을 만들라고 여러 차례 주문했다. 어째서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이 기울인 수고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국회의 당면 과제는 ‘인종 차별’이 무엇인지 법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줄이려면 차별이 무엇인지부터 규정해야 한다. 한국 헌법에 인종 차별 금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세하고 실효성 있는 법률과 단호한 행정 조치가 함께 가야만 인종 차별을 줄일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한국은 지난 40년간 자랑스런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미국·독일·영국에 견주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경험이 적다. 선진국 중에선 스웨덴이 가장 돋보인다. 스웨덴에선 브룬디 출신 여성 이민자가 사회통합·양성평등부 장관을 맡고 있다.”
▲ ‘단일민족’의 신화는 가장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공간인 농촌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서울 삼청동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가족의 날 행사에서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 아내가 어린 아들을 안고 즐거워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한국은 오랫동안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했다. 한국 민족주의는 사회통합 수단이자 외세에 저항하는 동력이었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산업화된 강국이다. 또, 우리 시대의 민족주의(nationalism)는 더 이상 사회 구성원이 혈통적으로 동질적인 특정 집단에 속하느냐 여부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브라질과 미국을 보라. 다인종 국가지만, 구성원들의 국가 의식은 강력하다.”
―순혈과 혼혈 같은 낱말을 삼가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많은 사람이 그런 표현을 불쾌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 타당하지도 않다. 한국처럼 DNA 연구의 첨단을 걷는 국가에서 쓸 말이 아니다. 인간의 피는 다 똑같다.”
―다인종 국가로의 전환은 과연 불가피한가?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10~20년 뒤엔 인구가 급격히 줄기 시작할 것이다. 집집마다 돈 버는 사람은 줄고, 대신 연금 받거나 은퇴한 사람은 늘 것이다.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노동력 부족이 한국 경제를 좀 먹을 것이다.”
―동화(同化)를 통한 사회 통합과 이질적인 문화의 병존(竝存) 중 어느 쪽이 이상적인가?
“모든 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도록 권장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 노동 윤리, 예의범절에 대한 오리엔테이션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구태여 막을 필요는 없다. 아무 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 안정에 기여한다.”
입력 : 2007.12.11 00:16 / 수정 : 2007.12.11 00:19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2/11/20071211000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