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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노총각 결혼문제 해결사 보생리 김향숙 이장

박옥화 0 1,512 2007.12.06 14:27
마을 노총각 결혼문제 해결사 보생리 김향숙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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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로 7쌍 부부 탄생시키고 친정엄마 역할까지 도맡았죠”

경상도 여성이 시댁인 전라도에서 이장을 맡아 마을의 궂은 일은 물론 노총각들의 결혼문제 해결사로 성과를 톡톡히 올리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신문과 방송을 통해 화제의 인물로 부각된 김향숙 씨(33·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 이장)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상도 새댁’이던 김이장은 42가구 70여명이 사는 이곳에서 나이 든 주민들에게는 딸이나 며느리, 시집 온 지 얼마 안된 새댁들에게는 ‘친정 엄마’이며 ‘큰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한다.

보생리에 살다 초등학교 다니는 큰아이의 학교 문제로 2004년 광주로 이사를 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생리로 출퇴근한다. 8만3,000여㎡(약 25만여평)의 잔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일을 챙기려면 매일 드나들어도 하루 해가 짧을 정도다.

김씨가 이장을 맡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처음 보생리에 정착할 때만 해도 이렇듯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일을 맡게 될 줄은 김씨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남편과는 울산에 있는 건설회사에 다니다 만났어요. 결혼할 당시에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나마 울산에서 산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어요.”

하지만 1997년에 결혼해 2년 정도 됐을 때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직장을 그만뒀다. 김씨는 혼자 직장을 다니며 6개월을 버텼지만 ‘타지 생활에 지쳤다’는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2000년 남편의 고향인 보생리에 오게 됐지만 이제 김씨에게 문제가 생겼다. 나고 자란 곳과 전혀 다른 농촌생활에 적응이 안되는 데다 젊은 새댁 한명 없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던 것.

“2년 정도 의욕 없이 지내다가 잔디 농사를 짓는 어머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마을 어른들과 얘기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적응해나갔어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니 생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답답하기만 하던 농촌생활에도 재미가 붙었다. 추곡수매와 같은 큰 일에는 앞장서 나서고, 응급 상황에 닥친 마을 주민을 차로 병원까지 데려가는가 하면, 노인들을 대신해 서류 작성을 도와주는 등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돼갔다. 이런 김씨에게 마을 주민들이 이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게다가 마을에 나이 든 총각이 많았는데, 중매업을 전문으로 하는 이모에게 소개해 한 총각을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까지 시켰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얼마나 재미있게 사는지, 마을 총각들이 너도나도 그녀에게 중매를 부탁해 보생리에서만도 7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그녀의 시아주버니까지 중매했는데, 베트남에서 시집온 형님과는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베트남에서 온 마을 새댁들의 ‘친정 엄마’ 역할까지 맡게 됐다. 김씨는 베트남 신부들에게 한국말과 요리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며느리로서의 고충을 시어머니에게 귀띔해주기도 한다.

집이 광주이다 보니 매일 주민들이 부탁한 약이나 생필품을 구입해 전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주민들의 소소한 것까지 챙기다 보니 일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일이 느는 만큼 보람도 크다.

한발짝 떨어져 있을 때는 적적하게만 느껴지던 농촌이 발을 담가보니 살맛 나는 곳이라는 김씨는 “마을 일과 농사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정작 고향에 오자고 했던 남편이 오히려 불만을 이야기할 정도”라며 웃었다.

이인아 기자


[최종편집 : 200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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