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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신부 딘티냔의 전원일기(8)] “안녕하세으… ㅛ·ㅠ 발음 너무 어려워 빨리 배워서 아기한테 가르쳐주고 싶어”

박옥화 0 1,467 2007.11.24 10:07
[베트남 신부 딘티냔의 전원일기(8)] “안녕하세으… ㅛ·ㅠ 발음 너무 어려워 빨리 배워서 아기한테 가르쳐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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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딘티냔씨가 한글 교육 자원봉사자 박인숙씨(왼쪽)의 발음을 따라하고 있다.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외국인 신부 한국어 수업 지원 _ 1577-5432 |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는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이해 교육, 정보화 교육 등 한국생활의 적응을 돕는 언어와 문화체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각 지역별로 센터를 두고 있으며 1577-5432로 문의하면 자동으로 각 지역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로 연결된다. 지원프로그램은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으’가 아니라 ‘요’라고 하세요. ‘요’!”


“‘으’가 아니라 ‘유’라고 해보세요. ‘유’!”


드디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국에 온 지 1년 반 만이네요. 그동안 뭐했냐고 하시면 “집안 살림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할까 하다가도 부끄러워요. 하지만 이제 남양주시청의 한국어 선생님이 일주일에 세 번씩 집으로 직접 오셔서 한국어 수업을 해 주신대요. 한국어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신 분이에요. 한국어 수업만 해 주시는 게 아니라 사랑이 키우는 법도 이것저것 알려 주시고, 제 고민 상담도 해 주세요. 너무 잘 됐죠?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어 수업 첫날이에요. 남편도 기분이 좋은가 봐요. 남편은 남양주시청이랑 여성가족부에 한국어 수업을 하는지 열심히 알아보고 남양주에서도 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전화를 기다리다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좋아했어요. 남편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속으로는 답답했나 봐요. 물론 부부가 사는 데 말이 다는 아니지만요.


말은 잘 안 통하지만 가끔 손을 잡고 기도하고, 고향 생각, 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리면 화장지를 무릎 위에 갖다 주는 것 정도면 통하고 사는 거 아닌가요.


사랑이가 선생님 오시기 전에 잠들었으면 좋겠는데 수업 시간이 다 되도록 눈빛이 또랑또랑 하네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라 공부할 책상 옆에 사랑이를 뉘었어요. 수업 받는 동안 조용히 누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생님은 자동차를 몰고 우리 집 앞으로 오셨어요. 저는 베란다에서 계속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오신 걸 보고 현관 문을 미리 열어놨어요. 선생님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셨고, 저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어요. 선생님 인상이 정말 좋아요. 선생님은 한국어 책을 여러 권 갖고 갖고 오셨어요. 베트남 말로 쓰여 있는 책은 제 것이고, 한국 말로 쓰여 있는 책은 선생님 책이에요. 선생님이 한글 책을 보면서 한 자 한 자 읽어주시고, 저는 열심히 따라 해요. 저는 사랑이가 한국말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먼저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할 거예요. 그래야 사랑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지 않게 말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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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딘티냔씨가 가족 호칭을 배우고 있다.

사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남편하고도 말이 잘 안 통하고 외출을 해도 답답해서 한국어 공부를 좀 하긴 했어요. 그런데 한국말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래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처음에 한국에 오자 남편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에 이름표를 붙여줬어요. ‘밥통’ ‘전자레인지’ ‘침대’ ‘텔레비전’ ‘문’ 등등 온 집안이 이름표투성이였어요. 처음 온 손님은 벌써 초등학생 아이가 있냐고 물을 정도니까요. 제가 그 초등학생이죠 뭐.


남편은 동네 유치원에서 자음, 모음이 쓰여 있는 커다란 포스터도 구해왔어요. 거실에 붙이니 오다가다 포스터를 보고 자음·모음을 외웠어요. 그런데 그림이 너무 유치했어요. ‘ㄱ’ 그림엔 기린 그림, ‘ㄷ’ 그림엔 돼지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그래도 덕분에 한글을 읽는 법은 쉽게 배웠어요.


한글은 산수 같아요. ‘ㄴ’에 ‘ㅣ’를 더하면 ‘니’, ‘ㅏ’를 더하면 ‘나’, ‘ㅗ’를 더하면 ‘노’…. 나머지 자음도 똑같은 원리예요.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쉬워요. 베트남 글자 배우는 것보다 더 쉬워요. 뜻은 몰라도 어쨌든 읽을 수는 있으니까요.


문제는 말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어 선생님이 오셔서 모음을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역시 발음이 힘들어요. 특히 ‘ㅛ’와 ‘ㅠ’가 너무 힘들어요. ‘ㅍ’ ‘ㅊ’ ‘ㅋ’도 힘들어요. ‘표범’을 계속 ‘프범’으로 발음한다고 남편은 핀잔을 줬어요. 자기는 베트남말 하나도 못 하면서!


“안녕하세으”, 저는 분명히 맞게 발음하는데 선생님은 계속 틀렸다고 하시네요.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사실 모두 발음하기 힘든 말이에요. 선생님은 정확히 발음하는 연습을 해야 나중에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할 수 있대요. TV 방송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베트남 처녀처럼 저도 한국말을 정말 잘하고 싶어요. 그럼 시어머니가 알려주시는 김치 담그는 법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고,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도 더 잘 들을 수 있고, 남편이 힘들 때 나한테 고민도 지금보다 더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좋은 한국어 선생님을 알아봐준 우리 남편 정말 멋있어요. ▒



/ 딘티냔 | 1988년 베트남 하이퐁에서 태어나 자랐다. 2006년 열아홉 살에 남편 김보성씨를 만나 결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살고 있다.
정리 = 김경수 기자 kimks@chosun.com

출처 :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03/2007070301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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