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있을 때 한국은 경쟁하는 사회라고 들었어요. 결혼해서 한국 간다니까 한국은 경쟁에서 이겨야 잘사는 무서운 곳이라고 누가 말해줬어요. 그래서 결혼해서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조금 무서웠어요. 한동안은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좁은 계단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베트남은 대부분 마을 위주로 살아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람이거든요. ‘쏨’이라고 하면 길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고요. 쏨이 몇 개 모이면 ‘랑’이라고 해요. 베트남 사람은 어디서나 모여 살아요.
한국에 왔더니 여기에도 ‘품앗이’란 것이 있어요. 김장할 때, 농사 지을 때 이웃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요. 베트남에서는 ‘도이 꽁’이라고 해요. 이웃에 일손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우리집에 일손이 필요하면 이웃이 도와주는 거예요. 베트남 사람은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것은 머슴 사는 일이라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아요. 베트남에 있는 외국 사람들은 이걸 무척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편 교회에서 언니들을 만나면서 저는 한국이 베트남이랑 비슷한 면도 많다고 느꼈어요. 괜히 무서워했나 봐요.
오늘은 우리집에서 구역예배가 있는 날이에요. 이웃에 사는 교인 대여섯이 우리집에 모여서 기도하고 음식을 나눠 먹어요.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에요. 베트남에서는 손님이 찾아오면 왕처럼 접대해줘요. 집에 손님이 오면 집주인은 접대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내놓고 대부분 집주인의 경제적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이 대접해요. 손님이 한 번 왔다 가면 며칠간 가족이 밥을 제대로 못 먹을 때도 있었어요. 가까운 동네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며칠을 머물고 가는데, 먼 곳에서 온 손님은 몇 달을 머물고 가기도 해요.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은 손님이 차지하고요. 그래도 베트남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손님 초대하는 일을 좋아해요.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은 베트남 사람의 오랜 전통이기도 해요.
베트남 사람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고향, 가족, 학력, 결혼, 자식 이야기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선뜻 꺼내요. 한국 사람도 그런 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오랜만에 우리집에 손님이 온다니까 저는 무척 바빴어요. 빵이랑 과일, 주스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언니들은 베트남에서 제가 가지고 온 커피를 정말 좋아해요.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콤하대요. 기도를 마치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언니들은 부부싸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저도 지난번에 남편이랑 싸운 얘기를 했어요. 밤에 잘 때 애기가 너무 울어서 제가 짜증을 냈더니 남편은 왜 애한테 짜증을 내냐고 신경질을 냈어요. 그래서 싸웠어요. 언니들도 남편이랑 싸운 얘기를 많이 해요. 남편이랑 싸운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해야겠어요.
언니들은 저보고 ‘새댁’이래요. 가끔은 ‘베트남댁’이라고도 해요. 새댁이란 말이 참 듣기 좋아요. 남편한테 물어보니 ‘새 신부’란 뜻이래요. 오늘은 남순 언니, 창숙 언니, 미숙 언니, 소연 언니가 찾아왔어요. 조용해서 가끔은 심심한 집에 손님이 와서 저도 모르게 들뜨고 조금 정신이 없었어요. 빨간 옷을 입고 온 미숙 언니는 가끔 김장 김치를 갖다 줘요. 저도 뭐라도 갖다 주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게 아직 없어서 항상 받기만 해요. 한국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지면 저도 언니들을 집에 초대해서 죽순돼지혀탕을 한번 대접하고 싶어요. 베트남에서 명절 때 먹는 국이에요. 말린 죽순이랑 돼지혀, 족발로 만든 햄을 같이 넣어 끓인 국이에요.
소연 언니는 3살짜리 딸 혜우를 데리고 왔어요. 소연 언니는 혜우가 쓰던 기저귀, 옷, 포대기, 이불, 우유병, 목욕용품까지 모두 물려줬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 아기가 예방접종하러 보건소 갈 때면 제가 한국말이 서둘다고 같이 가줬어요. 어떤 예방접종은 병원에서 4만원이 넘기도 하는데 보건소에 가면 모두 무료로 해줘요. 그런데 보건소에 안 가고 병원에 가는 사람을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저는 한국 음식 중 잡채가 참 맛있어요. 소연 언니는 제가 입덧할 때 잡채도 만들어줬어요. 베트남에서는 입덧할 때 못 먹는 음식이 너무 많아요. 게를 먹으면 자식이 게처럼 어긋나게 행동한다고 못 먹게 하고, 홍합이나 조개를 먹으면 자식이 침을 많이 흘린다고 못 먹게 해요. 토끼 고기를 먹으면 자식이 언청이가 된다고 못 먹게 하고요. 한국에서는 임신한 여자가 먹고 싶은 건 몸에 해로운 것 빼고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베트남 음식이 무척 그리웠어요. 소연 언니가 만들어준 잡채를 먹으면서 베트남 음식이 많이 생각났어요. 언니가 가끔은 엄마처럼 느껴졌어요. 소연 언니, 정말 고마워요. 제가 한국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언니한테 하고 싶은 얘기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해준 잡채 정말 맛있었어요. ▒
/ 딘티냔 | 1988년 베트남 하이퐁에서 태어나 자랐다. 2006년 열아홉 살에 남편 김보성씨를 만나 결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살고 있다.
정리 = 김경수 기자 kimk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