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다문화·다민족
(5)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은수 기자 eunsu@gnnews.co.kr 2007-12-24 09:30:00 |
이번에 치뤄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앞다투어 ‘다문화 가정’을 언급할 정도로 다문화 가정은 이제 국가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세계화 시대에 다문화 사회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이나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인식은 지난 10년동안 도리어 낮아졌고, 앞으로 결혼 이민자의 자녀가 차별 받을 것이라는 응답도 62%나 됐다. 실제로 다문화 가정 자녀 10명 가운데 2명꼴로 왕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정진성교수는 “마음으로는 개방해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가 훈련이 안되고 한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참 힘든 상황”이라고 현실을 진단했다.
#마음뿐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편견’과 ‘차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배타적인 단일문화의 높은 벽에 갖혀 ‘차이’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낯선 문화’를 ‘열등한 문화’로 여기는 편견을 갖고 있다.
최근 서울대 여성연구소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내용은 우리사회 인식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황정미 연구위원이 성인남녀 1203명을 대상으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를 분석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이 결혼이주여성의 증가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이주여성 증가에 대한 태도를 5점 척도(5점에 가까울수록 증가돼야 한다는 의견)로 측정했을 때, 20대 여성은 2.98점으로 가장 낮았다.
황연구위원은 “국제결혼이 사랑에 기초하지 않고 단순히 결혼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하면서 “국제결혼 과정에서 이주여성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젊은 고학력층이 노년층에 비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문화적 다양성을 덜 존중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자녀가 어머니의 모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연령이 젊을수록,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더 부정적 의견이 많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고 저학력일수록 외국 관습을 배척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황위원은 “한국 젊은층의 관심은 주로 특정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며 “결혼이주여성의 출신국을 후진국으로 여기는 위계적 문화의식 탓”이라고 지적했다.
#다문화 가정 한국사회 적응 어렵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우리는 늘 새로운 도전을 쉽게 이야기 하지만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배타적인 한국사회에서 정착은 눈물겹다.
#사례1. 저 미국인 아니예요.
러시아에서 시집온 사라포바(35.진해시)씨는 남편이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5학년된 딸과 네살, 두살된 아들을 두고 있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이곳 날씨도 춥지않은데다 근처에 공원이 많아 생활하기에는 편리하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한국말이 너무 어렵고 함께할 이웃까지 없어 한국생활이 외롭고 힘들다고 한다. 특히 “러시아인 이지만 사람들은 다 미국인 취급하면서 ‘헬로우’를 외치며 놀리고 자꾸 쳐다보는데는 기분이 나빠 참을 수 가 없다”고 했다.
#사례2. 무조건 강요하지 마세요.
필리핀인 아데나(27.함안군)씨는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한국말만 쓰라고 해요. 한국 사람도 한국말만 안하고 영어도 배우는데 우리에게는 한국말만 하라고 강요한다”며 불만을 토로 했다. 그녀는 10년 20년 한국말만 쓰면 필리핀 말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자기나라 말로 대화할 수 있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그녀는 “남편이랑 이야기 하기가 힘들어요. 내가 얘기하면 가만히 있어요. 대답안해요. 한국말도 힘들지만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서 말 잘안해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똑같은 사람인데 남자가 여자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는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집와서 배가 고픈데 남편이 자장면을 먹자고 해서 스파게티인줄 알고 시켰는데 시커먼 면이 배달돼 남편에게 “왜 스파게티가 빨갛지 않고 까맣냐”고 물어보니까, 이유없이 먹어라고 윽박질러서 댓구도 못하고 억지로 먹은 일도 있다.
#사례3. 자녀양육문제 힘들어요.
베트남에서 시집온 테이(31.산청군)씨는 첫 아기를 수술로 낳았다. 아기 우유병을 소독해야 되는 데 수술 후유증으로 너무 아파 기어서 부엌까지 갔다. 그리고 아기가 왜 우는지 몰라서 8시간을 안고 서 있었다.산부인과에서 진찰할때도 말이 안통하니까 매번 남편한테 전화해서 바꿔줬고 의사가 약먹는 것 설명하는데도 남편한테 전화해야 했다.
딸이 학교에 들어가고 난생 처음으로 운동회에 간날 아이로부터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들었다. 엄마의 생김새가 다른 엄마와 다르다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딸이 다른 아이와 다른 외모 때문에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사례4. 시어머니 간섭 힘들어요.
중국인 이연실(25. 마산시)씨는 몇년전부터 집 근처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이 일을 해도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아줌마들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만원의 일당을 받고 있다. 이씨는 이렇게 번 돈의 일부를 대학다니는 동생 학비로 송금하고 있다.
최근에 그녀는 한국에 시집온지 4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자 시어머니로부터“아들 낳으라고 데려왔더니 아이도 못 낳는 ×”이라며 구박을 계속 받아 남편과 이혼을 고민중이다.
지난 2006년 4월 5일 스리랑카 출신 야무나씨가 외국인근로자 자녀 특별학급이 설치된 안산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마중나왔다가 학교앞에서 법부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붙잡혔다.
같은 달 특별학급이 설치된 시흥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몽골인 학생들은 아버지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단속돼 강제 출국되어 자매만 한국에 남겨진 상태라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주민 백만시대’를 맞았지만 다문화가정의 인권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6일과 7일 양일간 영남권과 호남권을 돌며 지역의 현안과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다문화 시대 지역사회 인권증진방안에 관한 국제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지역사무소 김태은 조사관은 “크레파스 색깔 가운데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꾼것은 피부색깔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차별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개개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한국화만을 강요하다보면 많은 인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비아 패튼 한미여성회총연합회 회장은 "국제결혼여성은 이방인이라는 국민의식이 바뀌지 않고 혼혈인을 계속 차별한다면 한국의 세계화는 요원하다"고 꼬집었다.
#격리하는 교육 신중하게 접근해야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교육부는 올해부터 말씨와 피부색, 문화, 인종 등의 차이로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는 다문화 가정 자녀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5학년과 6학년 도덕 교과서에 혼혈아와 입양아 문제를 다룬 과제를 신설했다.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를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학생들에게 혼혈아와 해외 입양아들에 대한 차별이나 경시 관행이 잘못됐음을 가르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안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과 관련 외국인 자녀를 위한 특별학교 같은 것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학교는 흥미있고 편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자칫 외국인을 한국사회로 통합하기보다 오히려 격리하는 이른바 ‘(게토ghetto)’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취급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방송인 이다도시씨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은 각각의 언어를 배우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과적으로 다국어를 유창하게 습득하기 마련인데,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다른 언어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은 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구경거리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아왔다”며 “이러한 점이 가정에서부터 존중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권장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인종차별과 같은 일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무조건적인 동정이 오히려 불편하다.
농촌지역에서 까만피부와 큰 눈을 가진 이주여성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어귀를 지나는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베트남 신부가 마을주민 그리고 시어머니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상도 TV에 자주 방영되고 있다. 이들 여성들은 초기 정착단계를 지나 이제 마을 부녀회장까지 맡아 앞장서서 노인들을 돌보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은 정작 자신들을 수혜자로 보는 시선이 불편하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여성인권센터 상담실에는 아이의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부모 초청회가 있어 교육상담을 기대하고 갔지만 저녁 대접하고 선물주는 것이 전부였다며 한국 사람들은 다문화가정하면 저녁사주고 선물사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비판의 글이 자주 올라와 있다.
우리 사회의 주변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산업현장의 기계들이 멈출 수 밖에 없으며, 외국인 며느리 없이는 출산율이 더욱 저하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다문화 가족`과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20년이면 한국인 다섯 중 하나는 혼혈인이 된다. 그 때 한국의 힘은 사위와 며느리들로 이어진 다른 나라의 문화를 얼마나 한국문화 속에 잘 융합하여 우리의 자산으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제결혼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자연스럽지 않다.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여성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여전하고 혼혈인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다. ‘차별’과 ‘멸시’없이 여러민족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때 진정한 ‘다문화 사회 다문화 가정’이라 할 수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에 대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인종차별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인종과 다른 국가 출신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권고한 점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는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들을 사회의 주변인으로 방치해서는 안되며 우리사회의 훌륭한 인적자원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길러내야 할 책무가 있다. 대선주자들은 구호에만 그치지 말고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토대위에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올바른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www.gnnews.co.kr/view.php?no=179266§ion=SPMAR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