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한국문화를 배워야 하나요 … "
소유리기자
적응·경제적문제 이중고 … 취업지원 절실
1 기혼녀들이 말하는 보이지않는 장벽
2 인천시 정책과 보완점
이제는 잠잠해진 한류바람이 동남아와 일본을 강타했던 적이 있었다. 그 바람을 타고 외국인 여성들이 결혼 상대로 한국 남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한 쪽에선 한국 농촌 총각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외국인 여성들과의 만남을 주선했고 돈으로 두 사람을 맺어주는 결혼 정보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결혼이주 여성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결혼이주 여성 6천311명이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중국 조선족과 베트남 여성, 일본인, 필리핀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표 참고> 이주 여성들이 증가하는 만큼 인천시 정책도 나아지고 있을까. 두 회에 걸쳐 이주 여성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들어보고 이주 여성 정책에 보완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본다.
지난 13일 인천 여성문화회관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호시 히로미(일·43)씨와 원지혜(베·27)씨를 만났다. 이 둘 모두 평범하게 한국 남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해 살고 있는 여성들이다. 이들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시댁과 겪는 갈등은 한국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보고 들은 적 없는 한국 문화는 외국인 며느리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장벽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평범한 결혼, 평범하지 않은 한국사회
#1. 호시 히로미씨는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교회를 다니면서 20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덕분에 한국남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때였다.
친정에선 굳이 한국남자와 결혼해야겠냐며 반대했지만 30대 끄트머리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자신 없었다. 호탕하지 못한 일본 남자들을 만나는 것도 싫었다. 결국 친정 어머니 승락을 받아냈다.
결혼한 해 바로 아들을 낳았다. 처음엔 순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땅에 왔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끼게 됐다. 남편이 큰아들이다보니 시어머니가 기대하는 바가 너무 컸다. 떨어져서 살지만 부부 사이에 일어난 일을 간섭하려고 했다.
일본은 이혼율이 높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하늘 모시듯 받들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다. 한국에선 시부모님이 하늘이다. 명절 때 일을 할 때면 "한국 여자들은 쉬는 날이 없구나"고 생각했다.
남편과의 사이도 서먹서먹하다. 3년 정도 한국말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 서툰 탓에 대화하기가 어렵다.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중요한 얘기 아니면 꺼내지 않는다. 한국말을 잘하면 말문을 열지 모르겠다.
인천에 사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남편 술주정 때문에 힘들다는 친구도 있고 남편의 폭력 때문에 매일 밤낮을 우는 친구들도 있다. 남편은 그런면에선 문제없어 다행이다.
일본 여성들이 돈 때문에 한국으로 시집오는 일은 드물다. 나이가 많아 일본에서 신랑감을 찾을 수 없어 한국남자를 만난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처럼 혼기가 지난 남자와 결혼하기 마련이다. 폭력과 술주정, 경제적 어려움은 주변 친구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연고도 없는 인천에 온 것도 경제 문제 때문이다. 남편 직장이 서울에 있지만 그곳에서 집을 얻을 형편이 안된다. 남편은 결혼 뒤에도 직장을 서너번 옮겼다.
지금은 사는게 힘들지만 아이만큼은 이것저것 가르치고 싶다. 일본에 있는 친정에 유학 보내고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도 부탁해 시야를 넓혀주고 싶다. 혼혈아는 똑똑하다는 말처럼 아이 머리가 좋아 습득하는 게 빠르다. 할 수 있는만큼 해주고 싶다.
말을 터놓고 지낼 한국인 친구 한 명만 생겼으면 좋겠다.
#2. 원지혜씨는 시어머니가 소리지를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베트남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실수를 하면 설명하지 화부터 내는 일은 없다.
7남매 중 막내라 귀여움만 받고 자랐건만 막 대하는 시어머니를 보면 눈물부터 흐른다. 집 근처에 사는 시부모님을 자주 찾아봬야 하는 일도 힘들다. 베트남과 너무 다르다.
얼마전 지방에서 결혼이주 여성이 남편에게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등교육 받고 온 여성들도 많을텐데 한국사람들은 그저 무시한다. 남편과 거리를 지나다닐 때면 "돈 때문에 한국 남자랑 결혼했구만"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숨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4년 전 모 회사 베트남 한국 지사에서 비서로 일할 때 남편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왔다. 영어로 몇 마디 나누다 서로의 문화를 알려주고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집에서는 미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왜 한국남자냐며 싫어했다. 한참 한국으로 시집간 여성들에 대한 갖가지 안좋은 소문들이 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디 있으랴.
2년 전 베트남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남편에게 이곳에서 계속 살면 안되냐고 물었다. 남편은 "2년 동안 한국에서 나와 살았던 것만으로도 족하다. 다신 이런 생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6개월 전 남편이 베트남 지사 파견 근무가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1년에 한 번 친정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주변 친구들 얘기 들으니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답답하다.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하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 되기 때문에 남편과 생활에 문제는 크지 않다. 하지만 집에만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싫다.
대학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했고 베트남에 있을 때 꽤 큰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기 때문에 일할 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일자리가 만만치 않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인천여성문화회관과 인천여성복지관에서 영어와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가 지금할 수 있는 전부다.
아이는 둘 이상 낳고 싶지만 교육비 때문에 낳아도 걱정이다.
▲'우리'로 받아들이기
호시 히로미씨와 원지혜씨는 두 가지를 주문했다. 하나는 시부모와 남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인천에서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대부분은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일이다. 1차 교육에서 그치고 있는 셈이다.
원지혜씨는 "결혼이주 여성들에게만 한국 문화가 어떻고 한국 사람들은 어떤지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도 외국인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며 "결혼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데도 여성들만 한국에 적응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시 히로미씨 역시 "가족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이곳에 사는 같은 일본인이다"며 "남편, 시댁과 원만한 생활이 이뤄진다면 이주 여성들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일자리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이주 여성들이 결혼생활을 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특별한 일 없이 집안일만 하는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원지혜씨는 "베트남에 있을 때는 해외 출장이 잦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한국에 와서 바깥에 나가는 일이라곤 강의 들으러 가는 것 뿐이라 괴롭다"며 "그럴 때면 베트남에 살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라며 후회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호시 히로미씨는 "친구들 중에 바깥 출입이 두려워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일을 하면 경제적인 능력도 생겨서 남편에게만 의존하지 않을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우두커니 앉아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내 자신이 싫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김성영 인천시여성문화회관 교육운영 담당자는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2차 대상자인 가족들을 교육하는 일도 이주 여성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난 뒤 겪는 문제를 똑같이 느끼고 있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여성들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좋은 프로그램을 구상해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그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소유리기자 blog.itimes.co.kr/rainworm
호시 히로미(43세·일본)
결혼: 5년 전
사는 곳: 부평구 동수역 부근
자녀: 아들 1명
주로 하는 일: 일본인 친구들을 가끔 만남. 봉사일을 하고 있음. 아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마땅치 않음. 여성문화회관에서 한국어와 한국 음식 만들기 배우고 있음.
바라는 점: 한국인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음.
원지혜(27세·베트남)
결혼: 2년 전
사는 곳: 계양구
자녀: 없음. 2명 정도 낳고 싶음.
주로 하는 일: 여성문화회관과 복지회관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음. 영어와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 겸하고 있음. 한 달에 한 번 베트남 친구 만남.
바라는 점: 영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한국에 오는 베트남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싶음.
종이신문정보 : 20071218일자 1판 20면 게재
출처 : http://news.itimes.co.kr/Default.aspx?id=view&classCode=301&seq=306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