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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2007년은 민족 수난의 해?

박옥화 0 1,320 2008.01.03 14:56

2007년은 ‘민족’ 수난의 해?
민족은 과연 폐기의 대상인가


2007-12-30 10:12:52 

 


KBS <미녀들의 수다>나 SBS <사돈, 처음뵙겠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지상파에서 간판 오락프로그램이 된 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드는 2007년의 현상이었다. 2007년만큼 ‘민족’이라는 단어가 수난을 당한 해도 드물며, 2008년에도 이런 수난은 계속될 모양새다.

´민족´ 대신 ´다문화´라는 말이 각광을 받는 2007년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화 <디 워> 논쟁에서 애국 마케팅 혐의(?)를 통해 민족주의가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재한 외국인 100만 명, 결혼이주여성이 18만 명인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SBS <황금신부>, KBS <미우나 고우나>에는 외국인 여성들이 연기자로 나서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반영했다.

민족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인식과 행태를 불러온다는 비판들은 어제 오늘 생긴 것은 아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민족주의가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구분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사회 내부의 안의 다양한 모순을 가린다고도 한다. 예컨대 계급과 계급의식 약화 불러온다고 본다. 거꾸로 ‘남’ 즉 다른 민족 구성원에 대한 억압과 차별 생산한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우리민족의 번영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그곳의 생태환경을 파괴한다고 본다. 일종의 침략적, 파괴적 민족주의의 모습이다. 학자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점을 들어 민족주의를 폐기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제3세계의 민족주의와 제1세계의 민족주의를 모두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즉 저항적 정당방위적인 면과 공격적, 패권 제국주의적 면을 구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행태는 주로 강대국이 저지른 일이다. 약소국은 반대로 그것에 방어하는 차원에서 내집단을 결집시켰다. 한국인들의 동남아시아 인에 대한 차별은 편견과 인종주의 탓이 크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우선하는 것이지만,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민족주의는 민족을 우선하는 것이다. 민족 배타주의가 민족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정수일 교수는 각종 민족주의 개념 난립을 비판한 적 있다. 민족주의가 열린 혹은 배타적 민족주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족이란 민족의 발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닫혀 있으면 망하고 말기 때문이다. 자기의 민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민족을 인정하지 못한다. 민족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민족의 문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만다.

민족이 상상의 산물이라면 인간이 만든 제도-문화는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예컨대, 가족, 공동체, 국가, 조직에 대한 기대는 모두 상상체일뿐이다. 판타지가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고,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많은 이들이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인용하면서 민족주의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한족(漢族)은 혈통 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으며 한민족도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람들이 왜 민족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왜 생명력을 갖게 되는지 부차적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한국 사람들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단일 민족을 강조하면서 힘을 모으려고 한다. 왜인가? 그것은 살아남기-생존을 위해서다. 그 본능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정치적 역학은 현실에서 어떠한 선한 명분에도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라면 작은 나라가 사분오열하면 치명적이라는 암묵적인 공포심리가 있다.

상상의 공동체의 상상할 수 없는 힘은 바로 비합리적인 차원의 결집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단결과 헌신을 통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이나 착취만을 생각하게 된다. 국가는 이성적인 차원에서 단결과 헌신을 유도해낸다면 민족은 비합리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단결과 헌신을 유도해 낸다.

어떻게 보면 민족은 본능적이다. 본능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개념은 지식인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 심리의 근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체단위의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확장시키려는 대중심리는 물적 토대가 없어져야 비로소 사라진다.

민족은 상대적인 심리적 개념이다. 다른 민족이 없으면 한민족은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중국이나 일본과 떼어 놓을 수 없다. 최근에 고구려 사극이 붐이었던 것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탓이다.

한국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을 민족이라는 초인적인 얼개를 통해서 이루려도 한다. 한국의 지정학적 구도는 완전히 민족이라는 개념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에 있다.

더구나 서양은 그 정도가 낮은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의 특수성은 다른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서양의 사상사를 기준으로 민족주의를 대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민족주의에 대한 담론은 대부분 서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민족 범위 밖에 있는 동료 인간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불신,증오를 자극하는 것´이라는 한스 콘(Hans Kohn)의 지적은 일부이지 본질 전체는 아니다.

‘민족’의 수난은 세계화 시대라는 담론 덕이다. 세계화 시대이니 민족주의를 자동 폐기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단위는 없어질 수 없다. 다른 타자와 교류가 빈번해질수록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색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다문화가정이 많이 생기면서 한민족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중심적인 생각의 하나인 셈이다. 한국에 온 외국여성을 보자. 그들은 한국 국적이지만,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한국에 완전히 수용될 수도 없다. 우리의 며느리라는 말도 맞지 않다. 이것은 한민족 동포들의 심리와 같다. 한국에 온 베트남 여성이 비록 농촌 총각과 결혼해 살지만, 베트남의 민족 문화나 정체성을 버리지는 않는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민족을 포기한 곳은 없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도 마찬가지로 민족 관념의 생명성을 방증하는 것이다. 다만, 민족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환상은 경계의 대상일 것이다. 민족이 세계단위의 전부가 아니듯이 민족문화가 문화의 전체가 아닐 뿐이다. 다만 한스 콘(Hans Kohn)의 지적대로 민족은 역사의 소산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이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 분야로 다시 돌아와 보면, 민족중심적인 작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의도 많다. 세계 보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수성이 없는 보편성은 개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창조성도 없으며, 자기 색깔을 잃어버린다.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서구 기준의 보편성을 중점에 둘 때 더욱 그렇다. 추상적인 보편성은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박제시킨다. 결국 민족이라는 개념이 유효하지 않고 하고의 논쟁보다는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다양한 작품의 창작을 선보이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작가회의에 바라고 싶은 점이다. 민족이 유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민족에 전적으로 얽매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민족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던 환상에서 다만 깨어나는 것일 뿐, 그러나 지금 현재 민족이 모든 것을 구원해주리라 여기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솔로호프는 65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족이 이러한 논지에 복무하면 여전히 생명성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영혼을 나의 작품들이 맑게 하고, 인간애와 인류 진보를 향한 노력에 힘이 된다면 난 행복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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