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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너 나가 아닌 우리로

박옥화 0 1,406 2008.01.02 14:31

너 나가 아닌 '우리'로 
다문화가정 시대<하>함께 잘 사는 방법
 
 2007년 12월 24일 (월)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아이를 낳은지 100일, 꼬물거리는 행동 하나 하나가 즐거울 참이다. 중국 출신 정해기씨(26)는 그러나 둘째 계획을 묻는 질문에 거칠게 도리질을 쳤다.

중국에서 간호사로 일을 한데다 영어도 능숙한 정씨였지만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혼 이주 여성 중에는 드물게 ‘자연분만’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출산의 기쁨보다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통만 기억에 각인됐다.

정씨는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도 초음파를 보고 아기가 건강하다는 말을 들은 게 전부”라며 “친정 부모는 멀리 있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고 여기(제주)서는 말도 안 통하고 정보도 없을 수 없어 그냥 힘들기만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지난해 제주외국인근로자센터가 결혼이민여성을 대상을 실시한 상담 163건 중 가정폭력과 갈등에 대한 상담은 절반 수준인 78건(47.9%)나 됐다.

상담 내용은 충격적이다. 언어나 신체·성적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까지 고려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은 일반 가정폭력과 유사한 상황. “돈을 주고 데려왔으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며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협박을 일삼는가 하면 폭력을 행사한 배우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아내가 무단으로 가출했다거나 혹은 위장결혼했다고 신고, 불법체류자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이유로 외국인 아내를 상습폭행한 남편들이 줄줄이 경찰 신세를 졌다.

50대와 40대인 이들은 각각 중국 국적의 40대 아내(2006년 결혼)와 필리핀 국적의 30대 아내(1998년 결혼)에게 말이 통하지 않고 한국 풍습을 익히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습 폭행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6월에도 한국어 공부를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리핀 국적의 아내를 집에 감금하고 길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남편이 구속됐다.

결혼이민여성들 대부분이 가임 층에 속하기 때문에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정보가 누구보다 필요한 처지이지만 한국어 미숙과 문화 차이에서 오는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강관리와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낮아 모성 건강 위험도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베트남 여성과 결혼 3년차라는 한 남성은 “한복입고 다도를 배우는 일은 요즘 젊은이들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며 “필요한 것이 뭔지는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국문화에 끼워 맞추는 식의 지원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무 아닌 지원법 ‘無의미’=다문화가정 시대에 대한 자치단체의 대응 속도는 아직 더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 5월 ‘제주특별자치도 거주외국인 등 지원조례’ 제정하는 등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원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는 했지만 각종 현안에 밀려 아직은 뒷전에 놓여있다.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현황은 자치행정과에서, 결혼이주여성 관련은 여성정책과에서, 그 자녀들의 문제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 각각 담당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이나 의료보험증을 발급받는 등 일반에게는 일상적이지만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준비해야할 서류 등이 있지만 각자가 ‘알아서’해야하는 일로 남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도교육청은 다문화가정 담당교사 등으로 팀을 구성, 10월까지 ‘다문화·국제이해 교육자료’를 개발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그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정부 제안으로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이 제정됐지만 법 조항 대부분이 '의무조항'이 아니어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은 외국 여성 혹은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부부·고부 등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과 수혜대상 확대·맞춤식 교육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은 설득력있게 들린다.

제주외국인근로자센터 관계자는 “한국에 이주한지 상당 기간이 지나고 실력을 갖춘 결혼이주여성이나 전문 직업 종사자들을 다문화 이해 프로그램 강사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을 제주의 한 일원으로 감싸안을 때 진정한 다문화 가정 시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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