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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이주여성이 울고 있다

박옥화 0 2,464 2009.01.15 10:34

[전국][다문화가정을 껴안자] [1] 이주여성이 울고 있다
남편한테 얻어맞고… 매운'한국살이'
9쌍 중 1쌍꼴 국제결혼… 2세들도 6만명선
"와서 보니 모든 게 정반대" 쉼터 피신 늘어
체류자격도 불안정… 제도적 보완 시급

 

 

한국에 시집와 살고 있는 외국인 이주여성이 12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007년엔 연간 총혼인 건수의 11.1%가 국제결혼이었다. 9쌍 중 1쌍이 다문화(多文化) 가정인 셈이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2세도 5만8000여 명에 이른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성큼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충분치 못하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그래서 고단하다. 이들을 우리 사회가 껴안지 않으면 국제화시대에 신뢰받는 '미래 한국'을 기약하기 어렵다. '다문화 시대'의 그늘과 희망을 3차례로 나눠 살핀다.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하지만 남편과는 절대 함께 살 수 없어요."

중국 출신 이주여성 쉬라이(가명·32)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지난해 10월 결혼 3개월 만에 남편의 성적 학대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새벽녘 집을 뛰쳐나온 그녀는 전남의 한 여성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짧지만 지옥 같았던 신혼생활을 털어놨다. 정신연령이 현저히 낮은 남편(37)은 일상사는 물론, 부부관계까지도 옆집 사는 친지의 지시에 의존할 정도였다. 밤이면 이상 행동과 욕설, 폭행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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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의 한 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상담 도중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그녀는 "결혼중개업소 설명으로는 남편의 심성이나 경제력 등 조건이 너무 좋아 집안일만 열심히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고 울먹였다.

남편은 그녀가 있는 상담소에 찾아와 "이혼해 중국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녀는 소송을 통해 결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실패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가정폭력 피해 심각

결혼 이주여성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남자와 외국인 여자와의 결혼은 2000년 7300여 건에서 2003년 1만9000여 건, 2005년 3만1000여 건으로 늘었다. 이후 매년 3만 명 안팎의 외국인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오고 있다. 최근 정부와 민간단체 등이 앞다퉈 지원 시책과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이주여성들의 '한국살이'는 아직 맵고 쓰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가정폭력이다.

2007년 11월 한국인 남편(50)과 결혼한 가엔 티 홍(가명·21·베트남)씨는 결혼식 날 첫 폭행을 시작으로, 8개월여 동안 휴대폰을 받지 않았다는 등 사소한 이유로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렸다. 임신 4개월째였던 지난 7월 그녀의 취업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주먹과 각목으로 폭행을 당한 뒤 가출해 경기지역 다문화지원시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녀는 지금 출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부산으로 시집온 린즈(가명·21)씨는 말을 못 알아듣거나 밥이나 반찬 맛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남편(47)과 시누이로부터 수없이 폭행을 당하다 결혼 두 달 만에 협박에 못 이겨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 길로 집에서 쫓겨나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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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알코올중독 피해도

상당수 이주여성들은 결혼 전 몰랐던 남편의 정신장애나 알코올중독 등으로 절망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결혼중개업자 소개로 경북의 김모(37·정신지체장애)씨에게 시집온 안나(가명·30·베트남)씨. 청각장애(2급)와 정신지체장애를 각각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며 세살배기 아들을 키운다. 결혼 전 시댁 식구들의 장애 사실을 몰랐던 그녀에게 3년간의 결혼생활은 끔찍했다. 6개월 동안 아이와 함께 방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했고, 2~3차례 가출했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불안정한 체류권이 문제

이주여성들이 폭력적 상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은 무엇보다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혼 2년이 채 안 돼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주 여성들의 신분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 있다. 국적취득 신청 때도 남편이 보증을 서줘야 하고, 1년마다 갱신하는 비자 신청권도 남편에게 있다. 국적취득 전에 이혼하면 이주여성은 체류자격을 박탈당한다. 국적법은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피해가 입증되면, 귀화신청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입증이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에 이주여성들은 '강제퇴거' 위험에 직면한다.

소라미 변호사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성적 학대 등 무형의 폭력피해에 대해서도 회복 절차를 밟는 기간의 체류와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강제퇴거를 유예하는 조항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 정비·지원프로그램 시급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정을 지키는 이주여성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 전남도가 최근 이주여성 2134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46.6%가 '이혼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녀문제(66.9%), 밝힐 수 없는 이유(13%), 경제적 자립(4.9%) 등의 이유로 이혼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언어문제(48%)와 경제적 어려움(25%)을 꼽았다.

이주여성들의 불행에는 상업화된 국제결혼중개업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남편 상당수는 중개업체에 거액을 지불한다. 한 이주여성상담소장은 "일부 한국 남편들은 신부를 '돈 주고 구입한 소유물'처럼 여겨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 문제는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도 다양하다.

권미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은 "이주여성이 국적 취득 전이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공평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경아 호남대 다문화교육센터소장은 "대도시·중소도시·농촌 등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이주여성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다문화가족이 지역에서 생산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가 다문화가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 2009.01.15 03:17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14/2009011401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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