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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아내를 사왔다고 생각하니.....

박옥화 0 1,496 2008.01.28 10:50

[Why] 아내를 '사왔다'고 생각하니…

 


[강성혜 칼럼]
이주여성 배우자 폭행 시달려… 중개업체에 '바꿔달라'요구도

 


강성혜·이주여성긴급전화 1366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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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온 미르나(가명·26)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수화기 저쪽에서 그녀는 "시어머니가 나를 사람 취급도 안 한다"며 흐느꼈다. "한국말 못해서 답답하다고 때리고 친정에서 보내온 옷과 음식도 '더럽다'고 다 버렸어요. 툭하면 욕하고, 밥도 나 보는 앞에서 남편하고 둘이서만 먹어요." 처음엔 말리던 남편도 이제는 어머니 편만 들며 폭행을 일삼는다고 했다. 몇 차례의 상담 끝에 미르나는 결국 집을 나와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내가 일하는 '이주여성 긴급전화 1366센터'에는 하루에도 50 여통씩 미르나 같은 이주여성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가정 폭력, 성적 학대, 인격 모독, 경제적 빈곤, 체류 문제와 관련된 신분상의 불안, 인종 차별과 계급 차별 등등…. 이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수없이 많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이들은 가장 보호받아야 할 가정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센터는 말이 통하지 못해 적절한 보호나 지원을 받지 못했던 이주여성들을 위해 지난 2006년 11월 문을 열었다. 고통받는 이주여성들이 자국어로 자신의 문제를 상담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365일 24시간 체제로 운영하면서 상담원들이 6개국어(베트남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몽골어, 태국어)로 상담을 해준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너무 많다. 베트남 출신 루안(가명·22)은 "남편이 툭하면 '말이 안 통해 답답하다'며 때린다"고 했다. "화가 나면 무릎을 꿇으라고 하고, 목을 조르기도 해요. 남편이 너무 무서워요."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달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몽골 여성 오토코(가명·27)는 고부 갈등 때문에 2년 만에 집을 나와야 했다. 남편은 "어머니가 싫어하는 여성과는 살 수 없다"며 그녀의 전화조차 받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센터에 걸려온 상담 건수는 총 1만3277건. 내용은 '가족 간 갈등'이 20.20%로 가장 많았고, '가정 폭력'이 7.35%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 "남편이나 시부모로부터 가족의 한 일원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모욕적이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2007년 여성가족부가 펴낸 결혼이민자가족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이주여성의 16.9%가 배우자로부터 폭력 혹은 모욕적인 행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당하는 차별과 인권침해는 어디서 올까? 나는 '인간에 대한 존중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서로에 대한 존중감을 바탕으로 맺은 인격적 만남인데,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 과정에서는 이 밑바탕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중개업자를 통한 국제결혼 절차는 대개 5~7일 정도 걸린다. 마치 물건을 고르듯 배우자를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남성은 수십 명의 여성들을 쭉 훑어본 후 괜찮은 여성들로 줄여가면서 마지막 한명을 선택한다. 선택 시간은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4일 정도. 서로를 알기 위해 둘이 만나 대화하는 시간은 불과 한두 시간 정도다. 결혼을 결정하고 여성의 부모에게 승낙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고 하룻밤 합방을 한 뒤 남성은 혼인신고를 마치고 귀국한다.

이 짧은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뭘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선택하는' 남성은 그나마 첫눈에 호감 가는 여성을 '고를' 수 있지만, '선택당하는' 여성에겐 거부할 권리도 없다. 마음에 안 들어서 싫다고 해도 중개업자의 협박과 설득에 의해 마지못해 결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짧게는 2~3개월 후, 늦어도 6개월 후에는 혼인신고를 하고 입국 절차를 거쳐 남편이 있는 한국 땅을 밟는다.

삶의 기회를 찾기 위해, 또 가난한 집안에 도움이 되기 위해 국제결혼을 선택한 이들은 한편으론 꿈을, 한편으론 두려움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다. 아는 이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오직 자기를 선택해준 남편이 자신을 아껴주는 성실한 사람이기를 기대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남편이나 가족들이 중개업체에 주는 돈으로 여성을 '사왔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평생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반려자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영역의 도구로 판단하기 때문에, 말이 조금만 안 통하고 소통이 안 되면 답답해하면서 폭력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가사일이나 잠자리를 소홀히 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때리고, 심지어 중개업체에 "돈이 아까우니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 강성혜·이주여성긴급전화 1366센터장 우리 센터를 찾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디에 대고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오랜만에 편하게 자국어로 대화하면서, 그들은 "꼭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고 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런 작은 관심일지 모른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문화의 차이로 인해 생활습관이 달라도 '우리 이웃'인 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살 만하게 바뀌지 않을까.
입력 : 2008.01.25 23:00 / 수정 : 2008.01.26 19:12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25/20080125015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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