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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갈론마을 ‘베트남 효부’ 키우친

하티하이엔 0 407 2009.05.14 10:00
시어머니, 두 딸 두고 내 인생 찾겠다고 돌아갈 수는 없었죠” [중앙일보]

괴산 갈론마을 ‘베트남 효부’ 키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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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갈론마을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 보티 키우친(26)이 13일 가족과 함께 모였다. 왼쪽부터 큰딸 강영주 양, 시어머니 백옥순씨, 키우친, 동생 키우능, 시동생 강경수씨, 작은 딸 강은주양. [괴산=김성태 프리랜서]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갈론마을은 속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시골이다. 주민은 17가구 30여 명에 불과하다. 마을 반경 6㎞ 이내엔 마을조차 없다. 마을 이름은 중국 시인 도연명(365∼427년)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유래했다. ‘갈천씨지민(葛天氏之民·욕심 없이 순박한 사람)들이 은거해 사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13일 갈론마을의 입구에 있는 ‘갈론주막’을 찾았다. 탁자 13개를 둔 마을의 유일한 식당이다. 20년 된 주방의 한쪽에서는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 보티 키우친(26)이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는 한눈에 이방인임을 알 수 있었다. 키우친은 김치 한쪽을 손으로 집은 뒤 “엄마, 김치맛 좀 보세요”라며 시어머니 백옥순(66)씨 입에 넣어주었다. 그는 시어머니를 ‘엄마’로 부른다.

키우친은 19세 때인 2002년 초 이곳으로 시집왔다.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차로 5시간이 걸리는 시골에서 살다 국제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남편 강완수(당시 38세)씨를 만났다. 갈론마을의 유일한 외국인 주부가 됐다. 키우친 부부는 한글공부와 식당일을 함께하면서 사랑을 쌓았다. 영주(7)·은주(6) 두 딸도 낳았다. 시어머니 백씨는 김치 등 20여 가지 요리 방법과 인사하고 절하는 예절까지 가르치며 ‘한국 며느리’로 키우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화장품 사라”며 용돈도 챙겨주곤 했다. 시어머니는 “낯선 나라의 생활방식을 익히도록 며느리를 곁에 두고 지냈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만인 2005년 어느 날, 남편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타국 생활에 버팀목이 돼주던 남편의 죽음은 날벼락이었다. 그는 “세심하게 배려하고 아껴주던 남편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글을 깨우쳐준 사람도 남편이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홀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도 생각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 경수(40)씨도 “좋은 사람 만나 새 인생을 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과부’로 남기로 했다. “친정 엄마처럼 다정하게 대해준 시어머니와 인연을 끊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하더라. 한국 사람이니 한국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올 4월 키우친은 베트남에 있는 동생 키우능(23)을 이 마을로 불러들여 시동생 경수씨와 결혼시켰다. “형수를 보니 동생도 마음이 좋고 부지런할 것 같다. 동생을 소개해 달라”는 경수씨의 부탁을 받고 성사시켰다. 키우친은 시동생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살림살이를 챙기고 있다. 닭볶음탕·버섯전골에서 밑반찬까지 거의 모든 요리를 도맡아 한다. 경수씨는 “형수의 음식솜씨가 뛰어나 단골이 많다”고 귀띔했다.

백씨는 “큰며느리가 남편을 잃고도 집안일을 꼼꼼하게 챙겨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굴러온 복덩이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키우친은 남편 제사는 물론 시아버지 제사와 가족 생일도 꼬박꼬박 챙긴다.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아 마을 주민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다. 주민 안석자(59·여)씨는 “보기 힘든 효부(孝婦)”이라고 전했다. 키우친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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