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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첫 손님이 그해 운수를 좌우한다

하티하이엔 0 1,807 2007.12.27 14:08

첫날 첫 손님이 그해 운수를 좌우한다

 

필자는 이번 설 연휴 기간을 베트남에서 지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설날 사흘 전부터 설 다음 날까지 북부의 하노이와 하롱베이, 중부지역 최대의 도시인 다낭과 고도 호이안, 그리고 남부의 호치민(옛 사이공) 등 5개 지역을 누볐다. 그리고 오랜 외세의 압제를 끈질기게 이겨낸, 그러면서도 아직도 그 상처와 누대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베트남 국민들이 설을 지내는 모습을 겉핥기로나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필자가 본 바로는 베트남의 설(Tet)과 그 전후의 1주일은 이 나라 최대의 명절이자, 아직 가난한 티가 흐르기는 하지만 가장 흥겨운 축제기간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베트남의 거리거리마다, 그리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즐거움과 흥분이 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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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의 등 가게 ⓒ 조용경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설을 맞는 베트남의 모든 마을과 거리는 온통 붉은 색깔로 뒤덮인다. 모든 대형건물과 가정집에는 'Chuc Mung Nam Moi'(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진 붉은 색 현수막이나 붉은 바탕에 노란색 별이 그려진 베트남 국기가 내걸린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등을 사다 달고 거기에 촛불을 밝히며 새해의 소망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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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게 ⓒ 조용경
설이 가까워지면서 가장 붐비는 곳 중의 하나가 꽃 시장이다. 사람들은 꽃이나 화분을 사서 집과, 마을 주변의 탑, 그리고 공공시설들을 장식한다. 또 가까운 친지들이나 평소 신세진 사람들에게 조그만 귤이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나 황색 매화나무를 선물한다. 노란색은 곧 황금을 의미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북부지역에서는 붉은 꽃이 핀 복숭아나무를 선물하기도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선물 받은 매화나무나 복숭아나무가 설날을 맞아 꽃이 활짝 피게 되면 일년 내내 행운이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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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 호안 키엠 시장의 미용실 ⓒ 조용경
새로운 모습으로 꾸며지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남자들은 머리를 깎고 여자들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진다. 고달픈 일상 속에서 하다 못해 머리라도 매만지고 나면 뭔가 새로운 의욕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그네들이라 하여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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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안키엠 시장의 옷가게 ⓒ 조용경
아이들에게 있어 설이란 일 년에 한 번 때때옷을 입는 계절이다. 모질게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래도 설을 손꼽아 기다렸던 건 하다 못해 새 고무신 한 켤레라도 얻어 신을 수 있다는 설레임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의 기쁨이 곧 어버이들의 살아가는 보람임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터. 그래서 부모들은 다투어 시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축제가 즐거운 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푸짐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설을 지내기 위해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한다. 우리가 설이면 당연히 떡국을 끓이는 것처럼 그들은 집집마다 빤충(banh chung)이라는 쌀떡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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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게 문밖에 차려놓은 제단 ⓒ 조용경
또 집 안에 있는 제단이나 혹은 문 밖에 쌀떡과 닭찜, 과자, 과일 등을 차려놓고 그들을 가호해 주는 신들을 향해 새해의 평안을 기원한다.

준비하는 음식은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쌀떡과 닭찜은 어느 집에서도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설날 아침이면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여 새해인사를 나눈다. 아이들은 부모, 조부모, 그리고 친척 어른들에게 'Chuc Mung Nam Moi'라는 새해 인사를 드리고, 어른들은 미리 조그맣고 빨간 봉투에 넣어 둔 '복전'을 아이들에게 준다. 우리의 세뱃돈에 해당하는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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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오전 마을 광장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 조용경
예전에는 설날 아침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첫손님'이 누군가를 무척 중요시했다고 한다. 그 첫손님이 집안의 일년 운수를 좌우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리 부유하고 인품과 지위가 있으며 가정이 화목한 사람들을 찾아가 설날 아침 자신의 집을 방문해 달라고 간청하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이제 그러한 풍습은 자취를 감췄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설날 하루 동안은 다른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가능하면 피한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 두고 두고 원망을 듣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가까운 이웃들은 마을회관이나 동네 광장에 모여 덕담을 주고 받으며 함께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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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절을 찾아 참배하는 사람들 ⓒ 조용경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절을 찾아 참배하거나 우리의 불교 신자들이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처럼 참새를 사서 방생하면서 자신과 가족들이 올 한 해도 건강과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한다

한편 큰 도시의 광장이나 마을 회관 같은 곳에서는 설을 축하하는 흥겨운 마당놀이가 펼쳐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놀이는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성 싶은 사자탈춤놀이다. '띠 꺼우 키'(원숭이 다리 건너기)라는 허공에 매달린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전통적인 어린이 민속놀이 한마당도 이곳 저곳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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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안고, 선물을 잔뜩 싣고 고향으로 달리는 일가족 ⓒ 조용경
이 나라의 공식적인 설 연휴는 설날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많은 이산가족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와 가족을 찾아 귀성대열에 합류한다. 명절에 보고 싶은 얼굴을 찾아 고향을 찾는 심성은 만국 공통의 풍습이 아닌가 싶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설날을 전후하여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푸짐한 볼거리는 폭죽놀이였다고 한다.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설 연휴동안 현란하게 펼쳐지던 폭죽놀이는 화재와 인명사고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정부가 금지하는 바람에 이젠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직도 폭죽을 파는 가게가 더러 있는 걸 보면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 해도 오랜 전통이나 명절 분위기까지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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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전 봉투와 폭죽을 파는 가게 앞에 서서 옛날을 회상하는 듯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재미 있다. ⓒ 조용경

출처:

세월이 흐르고 사회, 경제체제가 급속히 변하는 가운데서 조상전래의 전통 역시 점차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 것이 베트남의 현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변한다 해도 새로운 꿈과 희망으로 설을 맞이하고픈 이 나라 사람들의 소망이 살아 있는 한 베트남 국민에게 설은 가장 소중한 명절이자 축제의 시간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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